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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도 꼭꼭 숨겨놓은 듯한 아주 작은 해수욕장 근처에 짐을 풀었다. 펜션 주인이 알려준 곳을 찾아 나선 골목길은 다시 찾기 어려운 미로 같았다.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후미진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과연 음식 맛이 있을까 싶어 되돌아 나오고 싶을 정도였다. 손때 묻은 후줄근한 물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면서 엉덩이가 쉽게 안착이 되지 않았다. 일어설 수도, 그대로 앉아 있기도 뭐해서 괜히 손바닥만 비비적거렸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싱거운 뉴스가 간신히 시간을 넘겨주었다. 재깍거리며 넘어가는 시곗바늘을 흘낏거리던 시각이 후각으로 옮겨지며 칸막이도 없는 부엌 쪽에서 스며 나오는 간간한 냄새에 젖어 들었다. 초봄에나 맛볼 수 있는 도다리쑥국이란다. 찬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방을 축적해둔 도다리와 지난해 풀들의 흔적인 덤불 사이로 막 얼굴을 내미는 여린 쑥과 만남이다.

설 명절이 지나고 찬바람이 살짝 꼬리를 내릴 때면 어릴 적 쑥바구니를 들고 들녘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쑥은 섣불리 캐다간 부스러지고 만다. 흙을 살살 긁어내야만 제대로 된 모양으로 캘 수 있다. 들녘은 아직 새싹들이 움츠리고만 있는 터여서 귀하디귀한 나물이다. 해충을 막기 위해 언덕을 태우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나온 것도 쑥이다. 까만 재 속에서 뾰족이 올라오는 쑥은 보기에도 영양이 풍부한 듯 보여서 더욱더 반갑다. 참으로 야들야들한 쑥이다.

수심이 깊은 개펄이나 모래 속에서 산다는 도다리는 모양부터가 특이하다. 색깔이 개펄이나 모래와 비슷하고 눈도 위쪽으로만 달려 있다.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숨죽이고 있다가 눈 안에 들어오는 먹이를 잡아채는 것이리라. 그렇게 위장술이 강한데 어찌하여 어부의 손에 붙들렸을까. 도마 위에서 손질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거칠게 파닥거리다가 뜨거운 냄비 속으로 풍덩 빠지던 소리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다.

말없이 툭 던지듯 국그릇을 내미는 아낙네의 손이 투박하다. 집 문턱을 넘으면서부터 짐작된 상황이기에 그리 거부감이 없다. 아니, 살갑게 친절이라도 베풀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어색해 보였을 듯싶다. 나 또한 그 인사에 맞추려 억지웃음이라도 날려야 했을 터이니 오히려 다행이다.

하얀 살 사이로 얇은 기름기가 동동 떠 있고 상큼한 쑥 한 줌이 사르르 숨을 죽인다. 숟가락으로 살살 휘저어 한 입 떠 넣으니 금방 튕겨나갈 것 같은 싱싱한 맛이 혀끝에 감긴다. 연하디연한 생선살과 뜨거운 국물에 녹아버린 듯한 연한 쑥의 어울림이 이리 간드러지게 부드러운 줄 새삼 몰랐다. 그냥 후루룩 마셔도 좋은 맑은 국물이 일품이다.

후줄근한 땟물만큼이나 순수하고 투박한 몸짓만큼이나 믿음직한 맛임을 알겠다. 찾기 쉬운 길가의 음식점을 제치고 구불구불 발걸음 시킨 펜션 주인의 입맛도 미식가 수준임을 알겠다. 번다한 풍경으로 유명한 휴양처가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주 작은 바닷가로 향한 내 발길의 방향 감각도 탁월함을 알겠다.

술국으로 이만한 게 없을 듯하다. 이렇게 먹는 것보다 술국으로 먹는 것이 훨씬 더 시원하고 감칠맛 나게 느껴질 듯하다. 진탕마시고 속이 쓰려서 가슴을 움켜쥐고 보대끼다가 한 술 떠먹는 그 첫맛이 얼마나 기막힐까.

나도 술을 좀 배워볼까 싶다.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가슴속을 태우고 나면, 가슴 밑바닥에 굳어있는 묵은 딱지들 박박 긁어내고 나면 너무 쓰리고 허해서 쥐어짜는 아픔이 엄습하겠지. 그때 이런 도다리쑥국 한 모금 쭉 들이마시면 쪼여들었던 가슴팍이 확 풀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이 최고의 맛이리라.

검붉은 노을이 온 세상을 붓질한다. 하루해를 삼킨 수평선 끝자락으로 도마 위에서 거칠게 파닥거리던 도다리의 당당한 뚝심이 오버랩 된다. 비록 좀 엇나간 삶일지라도 그리 서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결코 헛되지 않은 생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름이다.

도다리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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