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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올무 / 이정식

부흐고비 2022. 6. 23. 07:30

올무는 올가미를 만들 때 쓰는 철사나 노끈을 말하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유해조수(有害鳥獸)를 포획하는 형틀이다. 지금은 작물에 피해가 있어도 함부로 포획할 수 없도록 유해조수관련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농민들은 야생조수로 인해 농작물에 피해는 물론 맹수에 가까운 멧돼지가 내려와 위협을 하고 있다. 포획허가를 받은 지역에 허가받은 엽사(獵師)가 허가받은 수량을 포획하지만, 유해조수는 그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옛날에는 올무를 비롯한 덫과 함정을 만들어 피해를 줄이려 농민들은 안간힘을 다했다. 어릴 때 할머니는 “콩을 심으면 꿩 비둘기 쥐가 먹다 남긴 것을 사람이 먹는다”라는 푸념으로, 짐승들 때문에 헛농사 짓는다고 말씀하셨다. 가을에 벼가 누렇게 익을 때면 밤에 멧돼지가 떼를 지어 내려와 이삭을 뜯어 먹고 벼를 밟아 난장판을 만들었다. 농막을 짓고 밤에 솔가지에 불을 피우고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양철통을 두드려 쫓았다. 너른 들판은 몇 집의 농막이 있어 서로 인기척을 내면서 들을 지켰다. 작은 들은 우리 농막뿐인 곳도 있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은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농막에 가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 밤은 짐승 소리가 유난히 가깝게 들렸다. 나를 깨워 양철통을 두드리게 하고, 무서웠는지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등불을 들고 농막 밖에 나가 서성이기도 했다.

마을에는 변변한 농토를 가진 것 없고, 올무와 덫을 잘 놓아 사슴이나 멧돼지를 포획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택호(宅號)를 <목매쟁이집>이라 불렀다. 가끔 올무에 걸린 노루나 사슴을 지게에 지고 오는 것을 봤다. 그는 매일 산을 오르내렸다. 예리하게 날을 세운 2m 정도의 창을 지게에 매달고 다녔다. 올무에 걸렸으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멧돼지는 무슨 연유인지“땅 땅” 총소리를 내면서 창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가축을 비롯한 가금류는 소득원이었고, 소는 도축 허가를 받기 때문에 육식이 어려웠다. 올무로 포획한 것을 몇 집이 공동 구매하여 나눠 먹는 것이 유일한 단백질 섭취였다. 마을 사람들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짐승을 올무로 잡는 이를 속으로는 약간 천민 시 했지만 후대하는 편이었다.

산기슭에 우리 텃밭이 있었다. 꿩과 비둘기가 내려와 모조리 뽑아 먹었고, 꿩은 붉게 익은 고추의 씨를 발라먹었다. 피해가 막심하여 울타리로 나무를 심었고 약간 허술한 곳은 꼬챙이로 촘촘히 꽂은 후 비탈진 곳에 통로를 만들고 올무를 설치했다. 며칠 후 밭에 가니 올무에 뭔가 걸려있었다. 작물에 온갖 해작질을 하더니 드디어 걸렸구나! 쾌재를 불렀다. 얼른 뛰어가 보니 까투리였다. 싹을 뽑아 먹어 밭이 텅텅 빌 때는 모조리 잡고 싶었지만, 목이 졸려 죽은 모습이 측은했다. 발버둥 칠 때마다 올무가 조여들어 절규하는 모습이 떠올라 섬뜩했다. 목을 조인 올무를 풀고 깊이 묻어 주었다. 평소에 미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불쌍하여 올무를 설치한 것이 후회됐다. 이후 야생조수의 고기는 물론 삼계탕도 먹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했지만 굳이 이유를 밝히기가 싫었다. 옛적 수렵은 능동적인 퇴치 방법이 없고 올무 덫 함정이었다. 가끔 한두 마리를 포획해도 그 수가 줄지 않아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순수 자연에 의존한 농업이라 병충해가 심한 흉년에는 초근목피와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유해조수의 피해에 시달렸다. 요즈음은 총기를 비롯한 수렵 도구가 발달한 지능적인 포획으로 들짐승의 수가 줄어들기도 했다. 남획으로 야생동물의 수가 줄면 생태계 파괴로 올무나 덫으로 포획을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다. 포획 금지로 조수(鳥獸)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병충해로 산간에는 농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옛날 우리에게 가축이었던 개는 근래에는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계절에 따라 털갈이를 하여 굳이 옷을 입힐 필요가 없다. 따스한 계절이 되어도 옷을 벗기지 않아 기생충이 생겨 가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개 목에 띠를 두르는 것은 목줄을 달기 위한 것이다. 목은 숨쉬기의 가장 얇은 통로로 생사여탈(生死與奪)의 중심부이다. 목을 자르다, 목이 날아갔다, 목을 조르다 등은 죽음의 은유(隱喩)이다. 반려견의 목줄은 목을 조르는 올무로부터 생겨난 것 같아 거부감이 생긴다. 가슴줄로 바꿨으면 한다.

올무는 야생조수를 포획하는 도구이나, 올가미는 사람을 얽매기 위해 꾸민 잔꾀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주독립을 위해 분투하는 애국지사에게 올가미를 씌워 투옥하거나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해방 후에는 이념의 올가미로 동족끼리 피를 흘리게 하는 덤터기가 되기도 했다. 요즈음도 타인이 저지른 범죄에 올가미를 쓰고 오랫동안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가 진범이 체포되어 무죄 석방되는 사례가 있었다. 당사자와 가족은 억장이 무너질것이다. 국가에서 마땅히 보상하겠지만 마뜩할 리 없다.

중죄를 저지른 사람의 극형은 사형이다. 사형은 주로 교수형으로 올가미처럼 목에 줄을 걸어 순간적으로 숨을 귾는 형벌이다. 사형제도는 세계적으로 차츰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살인을 비롯한 중죄에 사형 선고는 있지만, 집행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무 올가미 덫은 유해동물 포획 방법은 법으로 금지하여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올가미나 덫을 덤터기 씌워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킨 죄는 흔히 시효기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국가에서 보상은 하겠지만, 어쩐지 씁쓰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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