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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남의 아재 / 서병호

부흐고비 2022. 6. 24. 07:45

“아재, 밥 잘 먹었는교?”

“야, 배 터지도록 먹었소.”

“아재, 내 더위 사소.”

정월 대보름날 아침 담 너머로 흔히 나누는 인사다. 다가오는 여름 더위를 먼저 불러 파는 우스개 놀이다.

‘아재’는, ‘아저씨’의 사투리라고 쉽게 규정 할 수 있으나 훨씬 정감스러운 호칭이다. 삼촌, 오촌은 아니지만 먼 친척이거나 가까운 이웃에게 서로 부르는 서부 경남에서 널리 사용되는 호칭이다. 어쩐지 살가운 맛이 나는 불음이다.

금요 산책 팀은 열 명으로 시작했다. 두 명이 병고로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팔순이 넘은 나이이기에 건강상 불참하게 될 사유가 자꾸 생긴다. 다 늙어가는 나이에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은 듣기 거북하다. 호나 별명으로 부르기로 했다. 두꺼비, 대장 등의 별칭으로 서로 부르고 있다.

S회장에게는 ‘두꺼비’라는 호칭이 딱 어울린다. ‘두꺼비’ 별명으로 통하는 모교의 유명했던 김하득 교장선생님과 생긴 모습이 닮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모습이나 말씨에 연상효과가 많다. 선생님의 아침조회 연설은 오 분 스피치였지만 학생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두꺼비 별명을 받은 S는 말을 잘 하기로 소문난 친구이다.

새 친구가 오늘 초대되었다. 같은 백씨인 B가 “내부친 항렬이 基자 돌림이니까 앞으로 아재로 부르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든든한 조카님을 두게 됐다고 좋아했다.

. 이렇게 맺어진 사연이 등산모임인 육봉회로 넘어와 ‘어이, 남의 아재’로 고착됐다. 우리 모두 그를 ‘남의 아재’로 부른다. 너무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이름을 지어준 그는 명작명가 자격이 충분하다, ‘대장’은 L회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L회장은 독일군인처럼 빈틈없어 얻은 별명이다. 군인 중에 제일 높은 분이 대장이니까 흔한 회장보다 대장이 영광스럽다.

작명은 문 간사를 빼 놓을 수 없다. 나의 호인 ‘허정’(虛鼎) ‘빈솥’도 간사의 작품이다. 이만하면 작명 간판을 내걸만하다.

자, 그러면 이제 ‘남의 아재’ 백 동문을 소개하겠다.

동국무역 대표이사 사임을 계기로 악운이 계속됐다. 세월이 약이라고 마음먹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김포로 이사 간지 팔년 동안 한문, 논어, 일본어 공부에 마음을 붙이고 있다. 학구열이 강한 그는 신문 잡지 등을 닥치는 대로 크리핑 하여 쌓아두고 있다. 기록의 보고를 만들어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서이다. 生의 마지막까지 중단 없이 계속할 것이란다. 나는 바로 ‘남의 아재’인 그의 이러한 자세에 존경심이 간다.

자신만만한 분야가 술이다. 남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단다. 본인이 스스로 주량을 평가한다면 ‘즐기는 편’에 속한단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안 마신 날은 몇 날일까 손가락으로 세어 볼 정도라네. 그러나 마음이 상할 때나 기분이 언짢을 때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술이 나쁜 상황을 더 나쁘게 하는 상승작용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의 아재’ 그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언제부터 시작한지 모르지만 펜 드로잉을 해 왔다. 주위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한다. 무얼 하나 진득하게 깊이 파고들지 못 하는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

김포시 호수 가에서 매일 집사람을 만나 안부를 주고 받는다.

“오늘도 집사람 만났제.” “그래.”

“김포에 望夫 한사람 났네.”

“봉안당을 돌아 나오는 길 오늘도 눈앞이 흐려진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딸네에게 갔다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내를 만나러 그는 내일도 호수로 갈 것이다.

형제도 잘 못 보고 사는 요즈음 세상에 이웃 어른이나 동네 분들께 ‘아재’라고 부르며 정답게 살던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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