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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웃기떡 / 성혜경

부흐고비 2022. 7. 1. 07:30

산 능선에 덧댄 연한 풀빛이 아슴푸레하다. 문을 나서면 아지랑이 아련하게 손짓하고 개울가에는 연분홍 물결이 너울거린다. 사월 꽃심이 들어서는가 분주한 마음이 산으로 앞장선다. 참꽃 따러 가야겠다.

품 너른 산벚나무가 마을을 굽어보는 산길에 접어들었다. 숨소리가 귀에 차오를 즈음에 산 중턱에 다다랐다. 소나무와 편백이 비탈길에 뻗정다리로 서 있는 모양새가 속정조차 모르던 그 옛날 지아비가 저랬을까. 인생의 뒤안길에서 살아온 날들을 구구절절 말하자면 책 한 권이 될 거라던 어머니들의 타령처럼 꽃이 흐드러졌다.

진달래는 시나 노래로 사람들의 정서 한 귀퉁이를 장식한다. 시어가 꽃향이 되고 리듬을 부추긴다. 진달래 피어있는 산을 올려보면 파란 저고리에 연분홍 옥사치마 입은 무희들이 버선발로 잘게 잘게 제겨디디며 춤추는 모습이 연상된다.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네. 건넛마을 김선달네 큰애기 얼굴 홍도화 피었네. 사주단자 받았다고 문밖출입 안 한다네. 니나노 난실 니나노 난실 얼싸 내 사랑아.”

흥얼거리며 꽃 따고 있으니 지나가는 이가 어릴 때 먹었던 진달래는 컸는데 요새는 꽃이 작다며 꽃 투정한다.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잊고 한 말이 아닐까. 참꽃은 누구에게나 아득한 추억을 소환시켜주는 일렁임이 있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참꽃이라고도 한다. 진달래도 고운 이름이지만 참꽃이 더 정겹다. 진달래라 불러보면 혀가 굴러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만, 참꽃이라고 해보면 말하는 입매가 얌전해진다.

생진달래를 먹은 기억이 없어 새삼 호기심이 일어났다. 한 송이 따서 입에 넣어본다. 단맛을 기대하며 미각 세포를 두드려본다. 얇은 잎의 식감이 혀끝을 감돌아 짓이겨지면서 살짝 쓴맛이 돈다. 거슬리지 않은 쓴맛이 사는 동안 꽃길만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참꽃을 따는데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나 보기에 좋으니 지나는 이들도 즐겨야 하는 선물 같은 풍경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 그루에 빈 곳이 생기지 않도록 따지 않은 듯 조금만 욕심을 부린다. 여린 꽃이 손의 온기에 상할세라 꽃받침을 잡고 섬세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따야 가지가 상하지 않는다.

참꽃 몇 움큼 얻자고 여기저기 산을 누비다 보면 우연찮은 만남이 일어날 때가 있다. 봄기운에 겅둥거리던 어린 노루와 정면으로 마주친 적이 있었다. 행여 놀랄까 꼼짝 않고 있었더니 정신 차린 노루가 짧은 꼬리를 흔들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노루는 무슨 심사를 이기지 못해 참꽃 흐드러진 산을 휘휘 다닐까.

꽃을 말리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산에서 돌아오자마자 꽃을 씻어 물기를 걷는다. 독성이 있다는 암술과 수술을 일일이 떼어내야 한다. 한참 손질하다 보면 손끝 맑은 분홍 물이 들고 손톱 속에는 잔향이 돈다. 두 손 모아 향기를 가두어본다. 상긋한 향기가 아주 짧게 스친다.

큰 프라이팬을 은근히 가열하고 광목천을 두 번 접어 반만 깐다. 해마다 차 덖을 때 쓰던 천이라 찻물 꽃물이 들어 얼룩덜룩하다. 해묵은 광목천 위에 면포를 깔아 참꽃 송이송이 수놓는다. 남은 광목천 자락으로 지긋이 덮어놓고 차 한 잔 여유를 즐기고 나면 습자지처럼 가슬가슬해진다. 밀봉하여 보관해 두면 눈으로 즐기는 차가 되고 요리 고명이 되어준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어머니는 대 이어 물려받는 조상 제사를 합제로 바꾸자고 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며느리 힘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이미 책임지고 있는 제례를 파기하고 싶지 않아서 짐짓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상 메(밥) 지어 올리는 일은 며느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시류를 타고 산다지만 한 세대 마무리는 하고 싶었다.

이듬해가 되자 어머니는 제기를 바꾸자고 했다. 물에 씻어도 오래간다는 물푸레 목기로 선택하더니 수저도 당신 것까지 여섯 벌 맞춰서 나에게 안겨줬다. 할머니들 제사를 합제로 돌렸으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는가!

음력 삼월이 되면 긴장이 된다. 새 달력에 행여 놓칠세라 적어놓은 날짜를 보고 또 보곤 했는데 올해는 양력과 음력 날짜가 나란해서 날을 기억하기 수월하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까지 시댁의 안주인들은 약속한 듯이 춘삼월에 세상을 떠났다. 호미를 내던지고 누워보니 떠나는 날이었던 할머니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을 등지기엔 안타까운 봄날이다. 언젠가 내가 이 땅에 안녕을 고하는 날도 삼월 어디쯤일까.

나는 좋은 시절을 만난 며느리이다. 부부지간을 비유하던 땅과 하늘의 경계가 없어졌고, 손자를 안겨주지 않아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먼저 사신 어머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제례 전통이라도 유지하려고 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시할머니, 올해는 참꽃이 참하게 올려진 웃기떡 드시면서 잠시 웃으소서.

봄이야 오든지 말든지 할 때가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빼곡하던 시절은 아침인가 하면 밤이었다. 참꽃에 함뿍 젖는 나이가 되고 보니 지금이 호시절이 아닌가 싶다. 이 봄, 만물을 다 깨워놓고 꽃 축제만 펼쳐놓고 무심히 떠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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