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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화두(話頭), 혹등고래가 풀다 / 김원순

by 부흐고비 2022. 7. 4.

제16회 바다문학상 수상작

해류와 조류, 고래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의 바다에도 엄연히, 면면하게 존재한다.

그날의 마음자리와 결에 따라 사그라지거나 분진처럼 풀썩이는 희. 노. 애. 락이 고래의 초음파 신호음을 보내며 조수처럼 들락거리고, 삶의 방향과 무게 질량은 암초 마냥 암묵한다. 삶을 맘대로 요리하고 지휘하는 마음의 심지心志가 판단하고 선택하고 조율하는 대로 삶이 펼쳐진다며, 천형 같은 화두를 삶의 심해에 풍덩, 던진다. 섬찟하다.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먹이를 탐색하고, 장애물과 해저의 지형을 파악해서 무리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혹등고래 노랫소리가 뱃고동처럼 구슬프다. 구가한 사랑이 홀연 떠나버린 것일까. 내 맘속에도 뱃고동이 울린다. 울컥해진다.

700만 년 전 태어난 인간이 7000만 년 전부터 살았던 혹등고래의 삶과 지혜를 오롯이 수혈받은 듯 전율이 인다. 1만Km 밖의 소리를 감지하는 청력을 받았다면 삶의 바다는 평화로웠을까. 부딪치는 소리에 난자당한 귀가 난청이 되어 바닷속 언어들이 불통되거나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

육지에서 바다로 이주한 혹등고래처럼, 바다에서 육지로 이주한 인간들도 삶의 해류와 조류를 따라 사는 한 마리 혹등고래다.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동안 먹이를 찾는 법, 해류와 조류의 물살을 타는 법, 안위한 곳을 살피는 법, 무리 속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질서를 몸소 보여준다. 먹이가 부족할 땐 제 살을 기꺼이 내주는 물고기가 된다. 만약 혹등고래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혹을 덜덜 떨었을 것 같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는 혹등고래처럼 노래를 부른다. 한恨을 원願으로 승화시켜 부르면 너울진 마음이 수평선처럼 고요해진다. 염전 바닥처럼 쓰고 짠 주름과 굳은살이 빚은 노래. 인내와 끈기, 땀과 눈물이 소금꽃잎이 되고 노래로 피어났다. 혹등고래 노래 속에도 소금 꽃말이 숨어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땀과 눈물이 해수처럼 갇힌 마음속 염전을 땡볕과 해풍에게 맡긴다. 한 송이 소금꽃이 필 때까지 군불을 때고 풍구질을 하다가 해미에 갇힌 적도 많았을 것이다. 지난했던 삶에게 헤살부리던 땡볕과 해풍의 심지를 이제사 알겠다. 악취 나는 삶의 바다를 치유하고 순화시켜서 바다의 가수 혹등고래처럼 유유자적 살아보라고. 내 가슴에서 바다내음이 물씬 풍긴다. 땡볕과 해풍의 체취다.

빵보다 위로가 절실했던 시절, 무시로 초음파신호를 보내며 나의 안위를 살피던 고래가 있다. 수호신 같고 불사신 같은 고래. 아둔한 어미고래의 빈 젖을 먹었지만,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묘기를 보여주면서 나를 호위하던 도도한 고래다. 불현듯 슬금하고 영혜한 고래가 보고 싶어서 칠흑 같은 밤바다를 빛의 속도로 달린다. 속도에 적이 근심 든 등대 눈빛이 한참을 따라오다 사윈다.

먼 데서 꿈결처럼 혹등고래 노래가 들려온다. 오래전 가라앉았던 화두가 부표처럼 둥둥 뜬다. 혹등고래 머리와 턱의 혹 속에 화두를 푸는 열쇠를 감춰놓았던 것일까. 마음의 분진이 파랑처럼 일어날 때, 해류와 조류가 거꾸로 흐를 때 고래고래 소리치면 혹등고래가 내게로 발길을 돌려서 천형 같은 화두를 풀어줄 것 같다. 내 삶의 바다 빛, 냄새, 주름 개수를 꿰고 있을 혹등고래에게 간수 같았던 삶을 해무처럼 푼다. 가붓하다.

망망한 불황의 바다에서 끌어올린 저인망 속에는 풀치, 간자미, 고도리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물고기를 낚는 게 아니라 무지렁이인 나를 낚아채버린 야광낚싯대와 지새운 미늘 같은 밤들. 모지라진 조새로 갯바위를 쪼고, 낡은 테왁에 업혀 숨비소리를 고르고, 퉁퉁 불은 미역줄기 같은 날들은 덕장에 널어 말렸다. 그러나 미끼조차 끼울 수 없는 애옥살이는 객물처럼 떠다녔고, 나는 번번이 빈 낚싯대를 둘러메고 ‘조금새끼’ 같은 불빛이 명멸하는 고적한 나의 포구로 돌아오곤 했다. 젖은 신발 속의 발, 생인손 앓았던 손의 닳은 지문 같은 날들이 또 다른 화두話頭가 되어 화두火斗 자국처럼 쓰라린다.

정해진 시간과 길을 따라 흐르는 바다는 태풍과 해일에 난장을 당해도 스스로 고요해진다. 그러나 삶의 바다는 시간과 길은커녕 이정표조차 없이 취보醉步처럼 너울대다가 무시로 호류한다. 무관심할수록 횡포가 심해서 세상에서 제일 난감하고 난마하고 난해한 경전이다.

이 방대한 경전을 해독하려면, 인간들이 토해낸 부조리, 자만, 이기 등의 갯물을 묵묵히 받아안는 바다의 물때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바다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달시계가 지어준 밀물, 썰물, 사리, 조금이라는 이름의 때. 달과 바다가 사랑의 밀당을 할 때 나는 가난살이와 밀당을 하느라 달시계를 잊어버렸다. 달시계를 읽을 줄 알면 해시계는 절로 읽혀지기 마련이다.

더께로 앉은 삶의 물때를 긁어내고, 해일에 휩쓸려 해초에 칭칭 감기고, 해저협곡을 빠져나왔다고 간대로 읽히지 않는다. 고래 뱃속에 갇혀도 고래 심줄보다 질긴 정신줄을 잡고 있어야지 혜안과 심안이 비로소 밝아진다.

저인망 속의 풀치 같았던 시간을 바다로 돌려보내고 소금쩍 핀 정신줄을 바짝 잡아당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 지어줄 꿈의 고래를 잡으러 수평선에 황포돛대를 띄운다. ‘산티아고’ 노인처럼 머리와 등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올지라도. 아마도 그날이 내 삶의 정점頂點일 것이다.

개펄 구멍에 거품꽃을 피우는 농게가 무진 부럽던 날들이 몽돌해변의 해조음처럼 차르락댄다. 뻘로 가득 찬 망사리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이끼 낀 마음자리, 닻자리를 혹등고래 노래로 토렴 하고 싶다. 물때를 기막히게 읽는 한소한 어부의 지어미이고 싶다. 미역줄기처럼 꾸덕꾸덕 일상을 말리고 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면서.

하루를 병풍처럼 접는 해의 뒤꿈치가 선혈로 낭자하다. 펄펄 끓는 바다로 뛰어드는 해를 수평선이 얼른 제 접시에 담는다. 하루를 어기차게 걸어온 세상의 발바닥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희망의 성찬이다. 수평선에 담긴 해에서 홍시내가 난다.

잘 익은 삶의 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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