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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방귀 실금 / 권오훈

부흐고비 2022. 7. 6. 07:44

고향 친구들 부부 동반 모임에 가면 남녀 부동석인 경우가 많다. 아예 다른 테이블에 나뉘어 앉는다. 우선은 스무 명이나 되니 한꺼번에 모두 앉기가 복잡하다. 대화의 주제가 다르다. 시골에서 자라 남녀 간에 내외하던 어릴 적부터의 고루한 습성이 몸에 밴 탓도 있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여자들의 몸은 예전 같지 않나 보다. 귀갓길에 아내가 여자들 대화 주제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것이 태반이라며 나눈 내용을 옮긴다. 병은 숨기지 말고 자랑하라고 했다. 누구 엄마는 어디가 아프고 어느 병원이 치료를 잘한다며 각자가 자기 질병과 치료 경험을 다투어 얘기한다고 한다. 그중 어느 엄마는 치질 수술과 요실금 수술로 아랫도리 구멍을 모두 손봤다고 해서 웃음보가 터졌다고 했다. 자지러지던 웃음소리가 그 때문이었나 보다. 요실금은 방광 기능이 저하되어 자기도 모르게 오줌이 흘러나오는 증상이다. 어떤 이는 기침만 해도 찔끔 나오고 크게 웃거나 놀라도 찔끔거려 팬티가 젖어 난감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자주 만나온 이웃사촌 형님 두 분은 함께 모여 있을 때 나오는 방귀를 참지 않고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내보낸다. 주위 사람들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동향으로 어릴 때부터 방귀는 참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한다. 뱃속에 가스가 차면 병이 된다나. 뀌고 나면 얼마나 시원하냐며 우리에게도 마려우면 참지 말고 뀌라고 한다.

사실 나도 가스가 차면 배가 벙벙한 느낌이라 옆에 아무도 없을 때는 시원하게 배출한 적이 있다. 언젠가 산책하러 나갔다가 방귀가 마려웠다. 한적한 산길이고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힘을 주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가스를 내보냈다. 아뿔싸, 맞은편 굽어진 숲길에서 두 여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이 코를 막는다든지 왜 방귀를 뀌느냐고 힐난은 안 했지만 고개를 외로 꼬며 스쳐 지나갔다. 나 또한 죄송하단 말은 안 했지만 민망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외면하고 얼른 지나쳤다. 평소라면 “안녕하세요."라며 아침 인사 정도는 했을 것이다.

나는 아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과 파크골프를 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녀가 공을 칠 때 내는 작은 방귀 소리가 왜 그리 귓속에 쏙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물론 민망해할까 봐 들은 체하지는 않았다. 이성과 함께 운동하면서 의도적으로 방귀를 뀔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생리현상이리라. 정작 본인은 너무도 태연자약하다. 움찔하며 주위를 둘러보거나 낯이 붉어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문득 실없는 사람이 해준 우스개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부부가 사랑놀음에 열중하는데 아내가 방귀가 마려웠다. 참기 어려운 생리현상이라 궁리 끝에 남편의 귓전에 대고 "여보, 사랑해!" 크게 외치며 방귀를 분출했다. 그런데 정사를 끝낸 후 남편이 물었다. "당신 아까 뭐라 하던데 무슨 말했지? 방귀 소리 때문에 못 들었네."

나이 들면 괄약근이 약해져서 대소변 제어가 어려움은 불가항력이다. 방귀도 예외는 아니리라. 요실금처럼 방귀도 실금이란 게 있을까? 요즘은 궁금하면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한다. 아! 있다. ‘방귀 실금’은 장의 노화로 인해 가스가 차면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새어 나오는 일종의 질병이다.

이런 병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 앞에선 방귀를 참는 것이 예의다. 그녀가 방귀를 뀌고도 민망하여 안 뀐 체하는 걸까? 나이 들어 능구렁이처럼 노회해진 태연자약함이겠지. 공 맞는 소리에 방귀 소리를 숨겼다고 안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방귀가 새어 나옴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가?

후자라면 심각하다. 인지장애까지 있는 게 아닌가? 방귀 실금에 인지장애까지 동반했을지도 모를 그녀가 걱정스럽다. 나 또한 더 나이 들면 피해 갈 수 있을까. 내 노후까지도 은근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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