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원더풀 미나리 / 최선욱

부흐고비 2022. 7. 12. 08:15

영화 <미나리>야말로 ‘코로나 블루’를 한방에 날려주는 진정 반가운 봄소식이다. 미증유의 이 끔찍스런 상실의 시대에 그나마 위안물이 되어주었다.

1. 영화를 보기 전

영화를 보기 전, ‘미나리’라는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미나리꽝 근처에서 놀았던 유년의 추억들이 활동사진처럼 펼쳐졌다.

우리 마을 한가운데에 지붕이 있는 커다란 우물이 있었다. 20여 가구 남짓한 동네에 유일한 우물터였다. 양쪽에 우람한 버드나무가 우물을 향해 맞절하듯 기울어져 있어 제법 운치있는 풍광이었다고 기억된다. 축축 늘어진 버들가지는 빨래하는 여인들에겐 그늘이 되어 주지만 꼬마들의 손아귀에 잡히는 가지들은 어김없이 찢기고 꺾이는 수난을 당했다.

어머니가 빨래하러 갈 때나 물 길러 갈 때면 나는 걸레 바구니라도 들고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우물의 주인장 격인 양철 두레박은 찌그러진 채로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일했다. 어떤 이는 물동이로, 어떤 이는 물지게를 이용해 하루 쓸 분량의 물을 집으로 날랐다.

우물가에는 띄엄띄엄 몇 개의 돌판이 박혀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빨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물은 퍼가도 퍼가도 끊임없이 채워지는 샘물일 뿐 아니라 집집의 소식도 퍼올리고 퍼나르는 소식통 역할도 했다. 새로운 소식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 맞장구치는 사람, 깔깔대는 사람들로 우물가는 늘 와글와글 흥성거렸다.

이곳에서 쌀보리 씻어 내린 뜨물, 온갖 푸성귀 다듬고 씻은 물, 걸레에서 나온 땟국물, 빨래에서 나오는 비누거품 섞인 물. 아기의 기저귀에서 떨어져 나오는 똥덩이 등 온갖 오물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해 내려갔다. 바로 미나리꽝이었다. 습지를 좋아하는 미나리가 또랑에 절로 뿌리를 내려 우리 논 있는 곳까지 길게 뻗어있었다. 또랑은 임자가 없었다. 그래서 누구나 미나리를 베어갔다. 베어가도 며칠 후면 또 돋아나는 풀이어서 누구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미나리꽝 하면 제일 먼저 실거머리가 떠오른다. 우리 눈엔 더럽게 보이는 물일지라도 오히려 미물에게는 그것이 양분이 되는지 미나리꽝에는 유독 실거머리가 많이 살았다. 거머리가 득실거리는 거무튀튀한 진흙탕 속에서 그 물을 먹고 자란 미나리는 순결한 잎을 자랑처럼 달고 나왔다.

이렇게 공동우물이 있는 미나리꽝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동네는 한 마디로 빈촌이었다. 앞 동네는 전깃불을 켜고 산 지가 몇 해째 되건만 우리 동네는 내가 고2 될 때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근동의 논은 거의 앞 동네 김씨 소유라 했다. 우리집을 비롯하여 대부분은 소작농으로서 100필지도 넘는 대농 지주 김씨네 땅을 부쳐 먹으며 살았다. 어쩌면 전깃불을 켜고 살 날을 고대하며 부지런히 농사일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땀방울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조금씩 힘을 잡아 자립의 꿈도 키워갔을 것이다. 그 꿈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미나리꽝의 미나리는 가장자리부터 가운데로 점령해가며 번성하였다.

2.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는 내내 25년 전쯤 미국에 머물던 시절 가까이서 보아왔던 한인이민자들의 생활상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1년은 아이와주, 1년은 뉴저지주에서 살았다. 뉴저지주에서 우리 가족은 한국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영어를 배워 본 적도 없는 산골짜기에 살던 여인이 미군과 사는 친언니의 주선으로 70년대 초에 어린 남매를 데리고 미국땅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손에 쥔 것도,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사람이 이민 1세대로서 타국에 정착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했다는 이 할머니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곤 굽은 허리와 파킨슨병과 외로움뿐이었다. 자식과의 언쟁에도 통역이 필요한 한국할머니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모든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당시 내가 만난 한인이민자들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세탁소, 네일가게, 푸드마켓 운영자 또는 종업원이었다. 이런 일은 주말 고객이 더 많기 때문에 주말에도 가게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한국에서 이만큼 일했으면 벌써 부자됐을 겁니다.”

이것은 세탁업하는 한 교포가 365일 가게문을 열어야하는 지겨움에 자조 섞인 말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들, 문을 가장 일찍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가게는 십중팔구 우리 교포가 운영하는 곳이라 했다. 현재는 비록 힘들지만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꿈, 나는 고생해도 내 자식들은 미국에서 공부시킨다는 자부심, 고국과 고향을 떠나 온 이상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 등으로 애써 버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 외에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느껴지는 인종차별 속에서 외로움은 또 무엇으로 달랬을까.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사는 게 이민자의 삶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가 한가해 보여도 수면 아래 오리의 발은 쉼 없이 움직이듯이 그렇게들 바쁘게 살고 있었다.

이민자의 아픔과 인내를 넘어 회복과 희망을 보여주는 영화 <미나리>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수백만의 한국교포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세계 모든 이민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인종 차별과 혐오가 심각해져가는 이때, 이민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우리부터 먼저 순혈주의를 우월시하는 편견을 버려야한다. 해외에 나가 사는 한국 교포나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이주민이나 넓게 보면 하나의 지구촌 시민이다. 우리나라가 경제력과 함께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의식, 인권의식, 평등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양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연꽃은 맑은 물에서보다 질퍽하게 더러운 물에서 더 큰 꽃송이를 피워 낸다면, 미나리는 탁한 물을 오히려 정화하면서 기운차게 뻗어오른다. 미나리 뿌리로부터 올라온 물기는 맑고 투명한 초록의 광택을 빚어낸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바르르 떠는 잎새, 물살에 파묻혔다가도 부르르 털고 일어서는 잎사귀마다 풀빛 윤기가 어릿거린다. 봄향기 머금은 잎새와 줄기가 이민 2세, 3세들이라면 이민 1세대는 미나리의 뿌리다. 오물투성이 속에 박힌 미나리 뿌리는 물이 꽝꽝 어는 겨울철에도 죽지 않고 숨죽이고 있다가 봄이면 새잎을 무성하게 밀어 올린다. 미나리가 외유내강인 것은 이 뿌리의 힘 때문이다. 여리디 여린 것 같지만 실은 여러해살이풀이다. 미나리라는 식물은 이렇게 생명력이 강해 어디에서든 잘 자라기에 영화 속 대사 그대로하면 ‘원더 풀’이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시민들이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산다면 원더풀 미나리처럼 진정 원더풀한 세상은 만들어지려나?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 어매 유품 / 정인호  (0) 2022.07.13
불안한 해빙 / 이주옥  (0) 2022.07.13
사랑메기, 그 바람의 유랑 / 하재열  (0) 2022.07.12
구두와 고무신 / 최병진  (0) 2022.07.11
지삿개 / 김영화  (0) 2022.07.1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