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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샌드위치를 싸며 / 장미숙

by 부흐고비 2022. 7. 19.

칼을 들고서 경계를 생각한다. 남겨야 할 것과 버릴 것을 가늠 중이다. 사는 일이란 매일 뭔가를 버리고 남기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도마 위에 아직 상품의 가치가 없는 가공 전의 제품이 놓여 있다. 이제 막 재료를 조합해 놓은 원형의 상태, 다듬지 않은 물건이다. 양은 오히려 넉넉하다. 그대로 판매한다면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음식물쓰레기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해진 규격과 모양이 있으니 가공을 거쳐야 상품으로 거듭난다.

성질과 감촉, 색과 크기가 다른 재료들은 이제 하나의 맛으로 통일될 것이다. 글쓰기에서의 주제와 다를 바 없다. 소재와 제재, 구성과 단락, 문장과 어휘가 어우러져 의미를 생성하듯이 말이다. 주제가 중심을 잡아야 작품이 안정적이다. 샌드위치도 각각 독특한 맛이 있다. 양과 크기가 일정해야 정갈한 모양도 나온다.

뼈대가 세워지고 내용이 채워지면 다듬는 순서로 들어간다. 단락을 나누고 사족을 덜어낸다. 세워도 보고, 눕혀도 보고, 돌려도 보며 문맥을 잡는다. 튀어나오거나 거슬리는 단어는 삭제한다. 그럴싸한 어휘라도 주제에 맞지 않으면 뺄 수밖에 없다. 아쉬움은 잠깐이지만 오류는 글을 망친다. 모든 재료의 용도가 다른 것과 같다. 칼을 들고 잘라야 할 부분을 가늠할 때에 순간의 망설임은 있다. 하지만 음식 재료에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제품의 질이 향상되거나 고급스러워지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단어도 찰나에 오고 찰나에 사라진다.

출근 전, 쓰다가 덮어놓고 온 수필 한 편이 도마 위에 오른다. 덕지덕지 곁가지가 붙은 글이다. 서사와 생각을 그저 나열해놓았다. 생것처럼 살아서 펄떡거리므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구조만 겨우 세워놓아 엉성하다. 속을 채운 재료는 아직 글이라고 할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의 모음이다. 단락이 매끄럽지도 않고 풀어진 상태다.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주춧돌이 되는 빵, 신선하게 맛을 아우르는 양상추, 상큼함을 더해주는 오이, 원색으로 때깔을 입히는 파프리카, 감칠맛의 햄, 풍미를 책임지는 치즈 등이 겹치고 어울려야 한다. 거기에 밋밋함을 잡고 개성 있는 맛을 살리는 소스는 포인트다. 재료가 같아도 소스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글쓰기로 치자면 소스는 주제나 다름없다. 주제가 주는 메시지, 소스는 맛의 비결이다.

마음속에서 발효를 거친 제재로 한 편의 글을 작성할 때, 뼈대인 구조를 잘 세워야 한다. 그런 다음 서사를 각각 어디에 놓을 것인지 플롯을 짠다. 스토리가 플롯이 되는 과정에서 작품의 질은 달라진다. 샌드위치 속 재료 순서를 잘 배치해야만 미적인 아름다움이 생성되듯이 말이다. 서사와 사유의 양에 대해서도 간과할 수 없다. 글이 늘어지지 않도록 쫄깃하게 문장을 연결하는 건 필수다. 단어의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 참신하고 새로운 단어 찾기에 골몰하는 데 소홀할 수 없다.

사유를 넓히기 위해서는 고뇌와 번민이 따른다. 제재에 대한 통찰은 작가의 대상 인식 능력에서 나온다. 남다른 통찰력은 수필의 깊이와 무게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제재의 심층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끈질김이 필요하다. 짜임새와 안정감이 있는 작품은 견고한 상품처럼 가치를 발휘한다.

글쓰기의 필수조건은 정신집중이다. 걱정과 불안, 슬픔, 분노 따위의 감정이 끼어들면 글은 흩어지고 만다. 마음이 신산할 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듯이 말이다. 글에 대한 지나친 자만은 실망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글을 엮다 보면 생각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뻗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엉뚱한 곳에 방점을 찍기도 한다.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어수선한 문장 안에 잡혀 빠져나가지 못할 때는 재료 전체를 버리는 일도 생긴다. 한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손쓰기가 힘들어진다. 꼬리만 자르면 될 일을 몸통까지 자르는 일도 빈번히 생긴다. 단락의 정리가 작품의 단정함을 돋보이게 할 때도 있다.

도마 위에 놓인 샌드위치의 문장을 고르기 위해 칼을 들이댄다. 먼저 나풀거리는 양상추가 거슬린다. 같은 재료라도 경계 밖으로 빠져나온 건 상품의 가치가 없다. 이른바 사족이다. 냉정하지만 깔끔하게 잘라낸다. 식빵의 가장자리도 때에 따라서는 쓸모와 쓸모없음으로 나뉜다. 제품이 눈에 확 들어오게끔 다듬을 때 불필요한 부분들은 경계 밖으로 사라진다.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길게 이어진 복문은 의미를 모호하게 하고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끊고 맺어주는 결단은 인생살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샌드위치의 모양을 잡으려면 사방 꼭짓점을 마름모로 다듬어서 세워야 한다. 글이 균형을 잡도록 단락을 배열하는 것과 같다. 색이 뭉쳐 있거나 비뚤어진 재료는 반듯하게 제자리를 찾아준다. 너풀거리는 양상추며 삐져나온 파프리카 등도 깔끔하게 처리한다. 이는 문장에 적당한 수사법을 배치하는 것과 같다.

샌드위치의 모양은 색에서 나온다. 신선한 색의 조화는 눈길을 사로잡고 입맛을 돌게 한다. 적당한 양이 보기 좋게 어우러져야 한결 돋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수사법이 작품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주지만 과하면 오히려 품위를 떨어뜨리듯이 말이다. 산뜻하고 간결하게 말맛을 살려주는 정도가 좋다.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가.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을 때의 당황스러움 앞에 절망한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도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을 때의 마음은 오기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지만, 매번 남기고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도마 위에 잘려나간 문장과 단어가 수북하다. 경계 밖으로 밀려난 조각들, 그러나 그것들에도 주어진 사명이 있다. 남겨진 것들을 지탱해 준 게 바로 버려지는 것들임을 글쓰기에서 발견한다. 온전한 제품이 되기 위해 깎이고 잘려나가는 것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수필에서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하는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팔과 손아귀의 힘을 조절하여 만들어낸 상품에 마지막으로 ‘정성’을 끼워 넣는다. 이제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 피와 살로 거듭날 것이다. 감동으로 다가가길 희망하며 스티커를 붙인다. 쓰다가 만 수필 한 편에는 어떤 울림을 넣을 것인가. 도마 위에 글자와 문장들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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