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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길 묻는 일 / 하재열

by 부흐고비 2022. 7. 21.

“요즘은 길 묻는 사람도 없어.” 옆 노인장이 불쑥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동의를 구하듯 힐끗 날 본다. 산행길의 중간쯤으로 산 아래가 멀리 트여 모두 땀 식혀 가는 곳이다. 나도 그도 배낭을 풀어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뜬금없다 싶어 쳐다보는데 앞쪽에 앉은 청년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비탈길 억새 사이에서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에 함께 오르고도 서로 눈길은 옆이 아니고 앞으로 더 쏠린다. 손에서 떼어내면 죽기라도 할 듯 기를 쓰고 가지고 다닌다. “제 갈 길 거기에다 묻고는 다 찾아가버리니 나 같은 사람에게 길 물을 일이 있겠느냐”며 일갈한다.

요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날로 돌연변이 튀어나오듯 얼굴 바꾸며 출현하니 사는 일이 때론 어지럽다. 사람의 일을 앗아 간다고 술렁댄다. 제가 만들고도 어쩌지 못하며 속만 태우는 소리가 들린 지 오래다. 길 묻고 답해 주는 정분도 그놈에게 빼앗긴 일에 포함된 것을 산중에서 야 불현듯 알아차린다.

“어르신 길 좀 묻겠습니다.” 이전에는 자주 주고받던 말이다. 시골의 마을 어귀에서, 장터의 갈림길에서, 도시의 한길이나 골목에서, 낯선 객지의 길 위에서 오가던 말이었다. 호칭이야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게 사는 정이라 했다. 두리번거리다 가도 지긋한 쪽을 찾아 먼저 묻는 게 몸에 밴 눈치였다. 때로는 저쪽 노인에게 물어보라는 말도 듣곤 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잘 알 것이라는 믿음이 구들장처럼 훈훈했다.

말씨가 기이했다. 등짐을 메고 사립문에서 손짓 발짓해 가며 할머니에게 말을 걸던 낯선 아주머니가 지치고 남루해 보였다. 토담 옆 늙은 감나무에 매달린 감 몇 개가 더 붉게 빛을 내던 해거름이었다. 육지로 물건 팔러 제주도에서 왔다고 했던 것 같다. 길을 묻던 끝에 하루 묵어가기로 이야기가 겨우 된 모양이었다. 짐 보퉁이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큼이나 낯선 물건들이 삐죽이 보였다. 그 아주머니에게 저녁상까지 내어 주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예전에는 그랬다. 과객의 하룻밤 유숙의 청을 물리치지 않는 풍속이 세상을 묶어 주었다.

길 묻는 사람이 확연히 줄고 있다. 내게도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물어오는 이가 있지만, 어깨가 후줄근하거나 자분치가 희끗거리는 사람이다. 학생이나 청년들은 좀체 없다. 젊은이들과 말 나눌 일이 그만큼 또 없어지니 갈수록 다른 세상 사람처럼 서로 그렇게 여긴다. 노년 이 된다는 건 우두커니 길가에 선 장승이 되어간다는 것일까도 싶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면 나는 차창을 열고 길을 물을 때가 있다. 눈앞에 젊은 여자가 꼬리 치듯이 잘도 가르쳐 주는데 왜 그러느냐는 아내의 힐난에도 고개는 연신 밖을 힐끔거린다. 나긋나긋한 말을 믿으면서도 가끔은 시원찮은 것 같아 자꾸 길 가는 사람 잡고 묻는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요물과 친하지 못해 생긴 울렁증이라 여기지만, 제대로 따라 가는 일이 억지스럽다.

한동안 비실대며 뒤 공원을 쏘다니는 젊은이들이 빛에 홀린 것 같았다. 요물 안에서 나타난다는 희한한 요괴 때문에 그런다고 했다. 그걸 찾아 쳐부수는 재미에 길을 넘나들며 쫓아다니다 넘어지기도, 차와 부딪치는 사고도 여러 번이라며 말이 많았다. 요물은 길 가르치는 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자꾸 사람을 호린다. 증강현실이라는 그쪽 세상과 접신하는 무당처럼 떠돌더니 이제는 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뜸하다. 한 번은 훔쳐보다가 이승이 아닌 다른 세상의 꼴이 그럴까도 싶어 화들짝 했다.

한길 가에서 가구 수선 일을 했다는 노인장, 그땐 일 바쁜데 길 묻는 사람이 성가시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그립다고 한다. 오래전에 일 접었고, 짝도 먼저 떠나 홀로 산에만 온다고 한다. 거푸 마시다 내게 내미는 막걸리잔에 외로움이 담겼다. 따라가기 벅찬 세상에 대고 분기를 삭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휴대폰 가지고 다니는가요?”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얼굴도 잘 안 내미는 아들놈, 전화로는 가끔 날 찾으니 그나마 다행 아니냐며 웃는다. 요물이 덜 된 폴더폰을 꺼내어 만지작거린다. 길 묻는 것만 아니고 사는 길도 휴대폰을 뒤지며 답을 구해내는 탓에 모두 아비 어미 찾을 일도 더 없어지는 것 같다고 했더니 헛기침을 한다. 둘이서 허하게 웃었다. 뿌연 송홧가루가 비탈을 타고 계곡으로 날리며 사라진다.

날로 진화하는 요물이 사람의 마음마저 따라잡는다고 뒤숭숭하다. 나잇살로 얼굴 세우고, 더러는 이정표 같은 말로 올려다보는 눈빛을 받기도 했는데 이제 어찌 될까 싶다. 마음 놓이는 일이 하나는 있다. 나나 젊은이나 제 몫의 사는 길 어디쯤 와 있는지는 그 요물들도 아직은 모를 것이라는 여유다. 차만 타면 정을 주는 입심 좋은 여자도 그것까지 알 턱이 없다는 안도감이다. 그마저 알아 버리는 날엔 세상은 검은빛이지 싶다.

길 묻고 답하던 일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싶어서 일터이다. 길손에게 잘 곳을 내주던 일은 전설이 되어 아물댄다. 내 안에 여전히 젊은이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몇 줄 이정표도 있건만, 애써 감추며 입 다문 장승이 되어야 하는 건가. 비록 천기天氣의 오작동이라 수런대지만 순서도 없이 길가에 쏟아진 봄꽃아, 그래도 반갑다. 내가 너에게 내 길을 묻는다.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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