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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노필老筆의 품격 / 이삼우

by 부흐고비 2022. 7. 21.

졸졸거릴 때 알아봤어야 했다. 주변으로부터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 눈치를 긁어야 했는데 느긋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졸붓이 하얀 점박이 눈꽃 모자를 덮어쓴 쌍둥이와 잘쏙하게 잘 빠진 미운오리 새끼 한 마리를 달고 왔다. 남들이 알면 남세스럽게 바람을 피웠나 오해하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모월 아무 날 모 월간지 지면을 통하여 철필에 관한 행적이 드러나면서 관심이 쏠린 게 화근이다. 잘난 이름 덕분에 다소 우쭐하여 거드름을 피우긴 했지만, 허랑방탕 쏘다니거나 누굴 만나러 마실 나간 적도 없다. 얌전하게 주인어른 안주머니에 매달려 칩거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언제 새끼를 쳤을까.

《수필과 비평》지를 통하여 ‘졸졸붓’로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린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아들 내외가 아버지의 늦깎이 수필 등단을 기꺼워하며 기념으로 몽블랑 만년필 세트를 선물했다. 놀랍게도 ‘로큰롤의 제왕’이라 일컫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기념하는 한정판이었다. 그것도 만년필과 볼펜으로 이란성쌍둥이 한 쌍이었다. 고가의 명품이라 손을 내저으며 한 번쯤은 내숭을 떨고 싶었지만, 아들 내외의 마음 씀씀이가 갸륵하여 못 이긴 척 받았다.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실컷 글때를 묻혀서 훗날 아들에게 건네줄 요량이었지만 백오동 심은 뜻을 범부가 알 리 없다.

새 만년필과 볼펜에는 엘비스 프레슬리 특유의 실루엣과 이름이 펜촉과 뚜껑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장인의 심혼이 펜촉 끝에 휘감기듯 흐른다. 투박해 보이는 뚜껑은 마치 중세 기사단의 투구처럼 늠름하고 독특한 문양으로 마이크를 형상화하고 있다. 글을 쓸 때도 흔히 만년필 끝 자루에 매달려 있는 뚜껑과는 격이 다르다. 책상 위에 뚜껑을 세워놓고 글을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묵중한 위엄이 서려 스스로 압도당한다. 내친김에 만년필 테두리에 내 이름 영문 이니셜을 새겨 넣었다. 언젠가 오고야 말 그 어느 날에, 아들의 아들이 유품으로 물려받았을 때 할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추억할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음이다.

그즈음에 허물없이 지내는 고교동창 S가 우리 부부를 집에 초대했다, 혀끝에 향긋하게 맴도는 밸런타인과 입안에 녹아드는 꽃살 안주로 마음을 녹이더니 상상도 못 한 선물까지 받게 되었다. 그게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내 등단 작품 속 졸졸붓을 또 하나 준비한 것이다. 눈시울이 시렸다. 내가 그런 녀석을 보기만 해도 사족을 못 쓴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졸졸붓이 신생아 절벽 시대에 누구도 예상치 않은 쓰리런 홈런을 날렸다. 누상에 서성거리고 있던 새끼 세 마리를 차례로 홈으로 불러들였다. 알프스 산맥의 유서 깊은 몽블랑 가문, 졸졸붓 집안에 올망졸망 입양되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필통 안에서 서열 다툼으로 들썩거리고 서재에 잉크 비린내가 뭉뭉하다.

만년필이 순우리말로 졸졸붓으로 불리듯, 볼펜은 돌돌붓으로 이름표를 붙인다. 졸졸붓이 촉촉하고 나긋하여 다소 여성스럽다면, 돌돌붓은 선머슴처럼 당돌하여 안기는 맛은 없지만, 뻔질거리며 잘 구른다. 펜 끝의 작은 강철 알이 펜의 움직임에 따라 돌돌거리며 글이 써진다는 뜻에서 돌돌붓이라 칭한다. 정감이 뚝뚝 흐르는 우리 소리글 음률에 절로 주억거려진다.

따뜻한 응원이 담긴 만년필로, 남의 글만 좋다고 마냥 밑줄만 그을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글밭을 일구어야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글눈이 어두워 잉크똥을 묻히며 가는 길이 막막해도 오방지게 써 내려가야겠다는 각오쯤은 그들에 대한 보답이요 예의일 것이다.

이십여 년 전에 내게 온 졸졸붓은 터줏대감인 양 뒷짐을 지고 있다. 이제 주요한 협정이나 계약에 관한 서명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고 문밖출입도 꺼린다. 아랫것들을 거느리면서부터 펜 끝에 힘이 들어가고 시큰둥한 게 건방도 늘었지만, 그와 함께 보낸 영욕의 세월이 떠올라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도 이참에 자신만의 영지領紙에서 일필휘지 호령하고 싶지 않았을까.

세력을 키우나 싶더니 요즘 부쩍 주가가 올라 기세등등하다. 늙은 제조상궁이 한 품계 아래 상궁 다루듯, 흥에 겨워 제 몸을 흔들어대는 한량閑良과 어디로 튈지 모를 여린 녀석을 얼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잡다한 궂은일은 천지 분간 못 하는 막내에게 시키고, 빈둥거리며 으스대는 로큰롤 황제에게는 실없이 군기를 잡는다. 촉촉한 감성이 그리울 때는 ‘Love Me Tender’를, 울적한 날에는 ‘hound dog’를 청해 들으며 푸른 물빛을 써 내려간 빛나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억에 잠긴다.

새로 입양한 것들은 콧대만 높았지 낯을 가려 순풍순풍 풀어내지 못하고 무춤거린다. 주인의 날아다니는 상상력을 감당하지 못해 글줄을 놓치거나 끊어버리기도 한다. 놋그릇도 오랜 세월 갈고닦아야 광이 나듯, 이리저리 글 마당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명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써 내려간다.

지난날 단기필마로 고비마다 깔밋하게 처결했던 졸졸붓의 결 푸른 의지와 노필老筆의 품격을 문득문득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 않은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쉼 없이 새 물결에 떠밀려 흘러가는 것. 졸졸붓이 지금껏 섬기던 주군을 받들고 대를 잇고자 새끼를 친 것으로 제 소임을 다한 셈이다. 아비 같은 마음으로 새내기들을 졸졸, 돌돌 길들이느라 여태 쇠붓의 먹물이 마를 날이 없었거늘….

머지않아 주공의 자서自書라도 한 권 엮고 나면, 몽블랑 산자락 눈 덮인 호숫가에서 글물 씻어 내리며 한가히 쉬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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