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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허물 / 박선숙

by 부흐고비 2022. 7. 22.

봄을 알리던 뻐꾸기 지나간 자리에 매미 합창이 한창이다. 여름을 노래하러 왔는가. 매미가 아침을 깨운다. 폭염과 코로나19를 지우려는 듯 씩씩하고 우렁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바람인가 보다. 새벽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 못 이루나 생명의 외침이니 어이할거나.

요즈음 산책길에서 매미 탈각蛻殼이쉽게 발견된다. 커다란 나뭇잎 뒤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매달렸다. 잡아당겨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매미는 허물조차 정교하다. 여섯 개의 다리, 배 주름, 눈 더듬이까지 세밀하게 조각한 듯하다. 신기한 것은 날개 부분이 아주 작다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 완성되는 작품이어서일까. 미완未完인 채 접혀있는 날개는 바깥으로 빠져나와 제 모양으로 펼쳐지나 보다.

등에 갈라진 부분이 탈출구인 것 같다. 몸통이 빠져나오기엔 너무 작은 크기다.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혼자만의 의식이 있었으리라. 오랜 시간 온 힘을 다했을 생각에 가슴 한편이 아리다. 새로운 탄생 위해 고통을 수반한 외로운 과정이었을 터다. 남겨놓은 흔적에서 지난한 세월이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보낸 오랜 세월을 잊고 싶은 듯 어느 날 날개 펴고 나무 위로 비상했다. 노래할 수 있는 날은 고작 며칠이다. 한 철 세레나데를 부르다 사라지고 마는 짧은 생이다. 한 생 한 사랑을 위해 뜨거운 계절 한복판에서 허물을 벗는 걸까. 몸과 마음을 온통 울려 고백한다. 사아랑 사아랑 사랑한다고. 숲속을 가르는 외침은 세상에 없는 울림이다.

가슴에 새겨주는 고사도 전해진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 232-303)이 ‘한선부寒蟬賦’에서 오덕五德을 알려주었다.

“매미 머리가 관冠끈이 늘어진 모습과 흡사해서 문인 기품을 갖추었으니 배움, 문文이요. 오로지 수액과 이슬만 먹고 산다 하니 깨끗함, 청淸이요. 사 람이 먹는 곡식을 먹지 않고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니 청렴함, 염廉 이요. 다른 곤충들처럼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사니 검소함, 검儉이요. 철 따라 허물을 벗고 자신의 할 도리를 지켜 울어대니 믿음, 신信이요.”

임금과 신하들은 이 덕목을 본받으려 했다. 이 뜻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조정에서 정무를 볼 때 매미 날개 모습을 장식으로 붙인 익선관翼善冠을 썼다고 한다. 미소한 곤충으로 태어나지만 노래를 들려줄 뿐 아니라 큰 가르침을 전해준다.

한 삶 위해 몇 겹의 허물을 벗어야 하나.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미물이기에 부족함을 안고 산다. 자신의 단점은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티만 크게 취급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일상이다. 자연을 보고 읽으며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 푸르던 나뭇잎도 빛나는 색을 입지만 바래지고 떨어지면 거름이 된다. 모나지 않은 몽돌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부딪힘의 세월을 보내야 보드라운 유선형이 되지 않는가.

타인을 위한 이해와 사랑은 허물벗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겸허하게 나를 돌아본다. 개안開眼 할 수 있다면 다행한 축복이리. 명오明悟가 열리기를 소망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미미한 시작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끌어 주리니. 또 다른 나를 위한 부활의 여정이 되리라.

헤르만 헷세는 <데미안>에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라고 썼다. 늘 노래하는 삶은 아니더라도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위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뜨거운 여름 시원한 매미 외침이 새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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