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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까치는 오는가 / 하재열

by 부흐고비 2022. 7. 27.

집 뒤 공원 길섶에 두 마리 까치가 나풀댄다. 아직 찬바람에 버석대는 검불 여기저기를 쪼아댄다. 아침나절 창밖에서 소리치던 녀석이 이놈인가 싶어 살폈다. 살을 에는 추위에 한동안 자취를 감추더니 봄을 물고 와 부려 놓았다. 며칠 새에 산수유, 개나리가 엷은 꽃잎을 내밀었 고, 벚꽃 움이 곧 터질 기세다.

문득 까치는 한겨울을 어디서 보내다 온 걸까 궁금해진다. 날이 추워 지면 새들이 사라지는 걸 당연시해 온 탓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일이다. 철새처럼 남쪽 따뜻한 곳으로 피접 다닌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으니 더 그렇다. 삭풍 몰아치는 산기슭의 까치집을 쳐다보면서는 빈집일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 얼기설기한 갖춤새로는 엄동 한천을 이겨내지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봄날 출현하는 녀석은 어딘가 먼 데서 숨어 살다 온 것처럼 생경하다.

몇 해 전만 해도 공원 숲에 둥지를 튼 까치 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다. 5층인 우리 집 뒤 베란다에서 잡힐 듯 붙은 낙엽송 꼭대기에도 집을 지었다. 옆 동의 까치집이 부럽기만 했는데, 어느 날 나뭇가지를 물고 들락거리던 걸 마음 졸이며 문틈으로 지켜보았던 일이 여태 삼삼하다. 몇 해나 까치는 봄이 찾아온 걸 먼저 알려 주었고, 무리 지어 음악회를 열었고, 창을 열면 나무들과 어우러진 한 폭의 풍경화로 걸려 있었다. 공원의 느티나무, 벚나무며 나지막한 숲의 바람을 받아내는 까치집의 흔들림이 좋았다.

올해는 다시 지으려나 싶어 휑한 가지를 쳐다보지만, 낌새는 어느 나무에도 없다. 그러니 필시 이 까치들은 다른 데서 살다 온 게 틀림없다. 꽃물이 들기 시작한 공원에 먹이를 찾아왔나 보다. 아이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냉큼 쪼아 물고는 나무 위로 오른다. 비둘기 무리와 먹이 다툼을 벌이며 분투하는 날갯짓이다. 내 인기척에도 태연하다. 어쩌면 나와 눈도 마주치며 면이 익었던 녀석이거나 아니면 그 아랫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땐 느지막이 아침 청소를 막 끝낸 때였다. 까치 소리가 다르게 부산스러웠고 밖에서 귓전을 알리게 하는 쇳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건가 여겼다. 볼일로 집 나서다 어질러진 뒤 뜰에 깜짝 놀랐다. 봄볕에 막 엷은 잎을 달기 시작한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쳐다보니 열을 지어 해마다 아파트 뒤를 푸르게 꾸며 주었던 낙엽송 여남은 그루가 모두 잘려나갔다. 중간 허리 부분 둥치를 삭둑 잘린 몰골에 눈을 감았다. 까치집도 내동댕이쳐졌다. 일꾼들이 잘린 등걸과 흩어진 잔가지며 잎들을 뒷정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야물게 뒤얽힌 몇 잔가지에 붙은 깃털이 아침까지 드나들었을 까치의 보금자리 흔적임을 알리고 있었다. 한참 서성대며 황당해하는 내 눈치를 읽은 것인지, “요즘 까치는 과일이나 쪼아대고 한다는데 뭐 대숩니까?” 우람한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도, 산 날짐승의 집을 가차 없이 허물고도 어찌 저리 태연할까 싶었다. 일당에 매인 밥벌이 일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들 속내는 그렇지 않으리라 여기며 나 혼자 안달 낼 수밖에.

미리 바퀴벌레를 제철 전에 박멸하기 위해서라 했다. 두 해 전부터인가 여름이면 집에까지 들어와 스멀대는 놈으로 야단은 떨고 있던 터였다. 나무 바퀴벌레라 했는데 매미만큼 큰 놈이 징그러웠다. 아파트의 응달 습지에 날 듯이 숨어다니니 원인은 밖에 있다고 했다. 앞 동은 괜찮은 거로 봐 우리 동의 뒤편 잡풀 더미와 낙엽송이 서식지로 꼽혔다. 큰 나무줄기를 타고 창문으로 날아든다는 말이 나돌며 의견이 분분했다. 동 대표자 회의 때 뜻이 모여 나무는 동강 난 난쟁이가 되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다. 밑 동도 아니고 왜 어중간하게 중간을 잘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명색이 수목 관리사인데 논의한다며 불러만 놓고는 벙어리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 애석하여 관리사무소에 따져 물었더니 미리 공지했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그쪽으로는 늘 건성으로 흘려듣고 있었으므로 더 따져 볼 낯이 없었다. 함께 모인 주민들도 가지치기나 하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

둥지가 사라진 허공을 돌며 까치가 며칠이나 까악까악 울었다. 사월이 부화기라고 했는데 알마저 잃어버린 것인가. 슬픔과 원망 같은 것이 하늘에 묻어 내렸다. 이미 말끔히 흔적도 없어진 일이니 어딘가 다른 데로 날아가 살아가겠지 했다. 끝물의 벚꽃이 무심히 떨어지며 새잎이 돋고 있었다. 이윽고 극성스러운 매미 소리와 천둥소리와 몇 번의 소낙비 소리에 까치 소리는 휩쓸려 갔다. 몇 년이 흘렀다. 다시 이 이른 새봄에 찾아와 먹이를 찾고 있는 녀석에게 나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간다. 톱날을 세운 채 뭐 대수냐고 했던 검은 턱수염 사내의 말이 윙윙댄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했고, 까치설날은 어저께이고 우리 설날은 오늘이라며 노래 불렀다. 해충을 잡아먹는 길조라 여겨 고마워했고, 그 갚음일까마는 늦가을 감나무의 홍시를 다 따지 않고 까치밥이라며 남겨주었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여긴 것이 아니던가. 잘려나간 둥치에서 새 줄기가 다시 굵게 자라 우리 집 창 높이까지 올라왔다.

그 벌레도 없어지지 않았다. 이따금 자지러지는 아주머니들의 외마디 소리에만 귀가 쏠렸는지, 그때 동 대표자가 아무래도 설굳은 회의를 했나 보다. 한자리하면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양 설쳐대는 그 완장 병이 이 동네에도 번졌던 것인가. 애꿎은 나무와 까치집만 부순 일이었다. 말이 많아지자 태풍에 쓰러질까 잘랐다며 옹색하게 둘러대기도 했다. 힘을 거머쥔 사람의 어설픔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곳곳에서 사위스럽다.

까치의 근심이 깊어간다. 언제부터라고 사람들은 밥도 아닌 과일 하나 더 먹자고 얼씬도 못 하게 내쫓거나 총질까지 해댄다. 게걸스럽게 너무 먹어서 생긴 병으로 저세상 문턱을 앞당기면서도 그런다. 까치는 그냥 까치이건만 인간의 득실에 따라 익조요 해조요 하며 몸값을 매기 니 까치로서는 어이없을 일이다. 어쩌다 집에 스멀대는 벌레 하나 잡으려 까치집을 허물어버리는 처사에 기가 막혔을 것이다. 동요로 칭송받기는커녕 홍시 하나 못 얻어먹을 처지로 곤두박질했다. 어느 자치단체에서는 여태 상징 새로 삼았던 까치를 버리고 다른 새로 바꾸었다고도 한다. 호랑이만큼이나 민화에도 자주 그려 넣어주던, 길고 깊은 줄 알았던 인간의 정분이란 게 이렇게 쉬 앵돌아질 줄이야. 사람 일이 먼저 라 하니 까친들 어쩔 것인가.

칠월 칠석날 밤 까치는 하늘 위로 올라갔다. 오작교를 놓으며 직녀의 할아버지인 옥황상제에게 읍소하는 말이 울린다. “사랑과 나눔이 뭔지를 제대로 알기는커녕 저밖에 모르는 인간이 세상일을 함부로 재단하지 못하게 하소서. 이제 땅 위에 인간이 유익한지 해로운지 저들이 알 게 해주소서.”

벚꽃 움트는 봄날에 기도를 올린다. 하늘 타고 내려온 까치일까. 원래 요지경 티끌세상이지만 새봄은 그래도 오기 마련인 것을. 이 봄엔 구원을 풀고 다시 우리 집 창틀의 풍경화로 앉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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