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신기독愼己獨 / 권오훈

부흐고비 2023. 5. 9. 12:37

한때 독서클럽에서 정한 도서로≪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을 읽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에 버금갈 정도로 명석한 스웨덴 물리학자 스베덴보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가사假死상태에서 여러 차례 사후세계를 다녀와 쓴 책이라 전해진다.

우리가 죽으면 중간지대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생전 선악 행위의 결과에 따라 아홉 단계의 천국과 아홉 단계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천당과 지옥 모든 곳을 다녀왔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라는 사명을 받고 방대한 내용의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인간은 사후에 누구나 천당과 지옥으로 가게 되는데 각각 9단계가 있다. 판단의 기준은 양심과 선행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나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삶, 남을 위한 선행으로 일생을 살았다면 그 수준에 맞는 단계의 천국에 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악행, 위선, 간음을 일삼은 사람들은 그 정도에 맞는 단계의 지옥에 떨어진다. 유년 시절 마을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나로서는 심정적으로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편이다. 그런 기반에서 책의 핵심 내용은 은연중에 내 생각과 행동을 지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뇌리에 박힌 내용이 있다. 악행은 실제의 행위뿐 아니라 그런 마음을 먹는 것조차도 죄악이 된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가라. 곧 신기독愼己獨은 《대학》과 《중용》에서 자기 내면의 충실을 강조한 유교의 수양덕목이다. 그 이후 신기독은 나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 내 일탈의 싹을 원초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해온다.

혹자는 이생이 다하면 몸은 썩고 영혼은 사라져 무의 상태가 되며 사후세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러니만큼 너무 도덕적으로 굴지 말고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현재를 즐기며 살라고 한다. 작금의 세태는 죄의식을 느끼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비정하고 난폭한 범죄와 불법, 위선들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영향력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나마 세상이 살 만한 면도 있다. 실제로 사후에 영혼이 현생의 삶을 심판받아 영생을 살 게 된다면, 마구잡이로 살아온 현생의 결과로 떨어지게 될 지옥행의 그 낭패를 어찌할 것인가.

그런데 나는 소소한 일에는 신기독을 내세우고 견득사의見得思義까지 들먹이며 제법 조선 선비인 척 흉내를 내어 보지만, 큰 이득이 걸린 상황에서도 그걸 이겨낼 수 있을 만큼 확고할지 나 자신도 의심스럽다. 더구나 소소한 배추 사건이 나를 더욱 당혹하게 만들었다.

아침 운동 길에서 수밭 계곡 입구에 있는 밭을 지날 때다. 겨울도 코앞인데 아직 수확하지 않은 배추밭에 눈길이 자주 간다. 왜 아까운 배추를 안 뽑아 갔을까. 배추밭을 지날 때마다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배추전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그냥 두면 곧 몰려올 추위에 다 얼어 죽어서 어차피 버려야 할 것이다. 얼려 죽이는 것은 돈 많은 노파가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격이다. 얼어 죽기 전에 뽑아다 이웃과 나눠 먹는 게 좋겠는데..., 비약이지만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셈이다.

텃밭 농사를 지으니까 힘들여 가꾼 농작물의 귀함을 잘 안다. 그런 농작물이 밭에서 썩어가는 걸 보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 안타깝다. 오죽하면 남긴 음식을 버리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음식 버리면 다음 생에 굶주리는 거지로 태어난다는 말로 협박까지 해오지 않았는가. 괜스레 내 양심을 유혹하게 만드는 밭주인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웃 친구에게 그 얘길 했다. 썩혀버릴 바엔 필요한 사람이 수확해다 먹도록 주인에게 승낙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수소문 끝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했다.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다. 이튿날 운동 길에 밭을 지나는데 마침 차가 한 대 와서 멈췄다. 한 사내가 내려서 배추밭을 휙 둘러보더니 두어 포기를 뽑아서 갔다. 말을 걸어보려다 쌀쌀맞던 거절 말투가 떠올라 그냥 지나쳤다.

그날 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배추는 얼어서 이제는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음식으로는 쓰이지 못하지만 거름으로는 유용하리라. 자기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는가. 나눠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흉보는 것 자체가 도둑 심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날 밤 나는 그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다잡으려 무척 애를 썼다.
                                                                                                                   제22회 수필과비평 문학상 대표작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