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노래 / 유자효 잃을 줄 알게 하소서./ 가짐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잃음인 것을,/ 이 가을/ 뚝뚝 지는/ 낙과의 지혜로/ 은혜로이/ 베푸소서./ 떠날 줄 알게 하소서./ 머무름보다/ 더 빛나는 것이/ 떠남인 것을,/ 이 저문 들녘/ 철새들이 남겨둔/ 보금자리가/ 약속의/ 훈장이 되게 하소서.// 가을 햇볕 / 유자효 가을 햇볕은 여름에 남은 마지막 정情마저도 태워 버린다/ 모든 미련을 끊고 찬바람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럼으로써 가을 햇볕은 여름이 남긴 수분을/ 알곡이 모두 빨아들이고/ 과육果肉을 더욱 단단하게 여물게 한다/ 아, 다행하게도/ 병든 대지가 서서히 제 몸을 치유한다/ 다친 곳이 많았다/ 아픈 곳이 많았다/ 천천히 천천히 몸을 뒤채이며/ 온몸에 업고 안고 있는/ 잘디잔 ..
예나 지금이나 시골 동네는 조용하기만 하다. 장닭이 지붕 위에 올라가 꾹- 꾹꾸구~ 하고 울면 다른 집 장닭도 나도 질세라 따라 울고, 봄이 되어 새 풀을 먹고 기운이 오른 황소가 암소를 보고 환장을 하는 것 외에는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골 동네에 이변이 일어났다. 신문 잡지 하나 없고, 라디오 하나 없는, 기계라고는 자전거밖에 없는 동네에 집채만 한 트럭이 들어온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처음 보는 자동차를 보기 위해 다 모였다. 나도 트럭을 보기 위해 달려갔다. 그런데 내 등 뒤에는 동생이 업혀 있었다. 그날따라 동생 업어주는 배당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좀 창피하지만 좋은 구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 당시 부모는 농사일 나가고 할머니가 손자를 길렀다. 줄줄이 사탕 그 많은 손자를 다 돌보지 못하고..
보릿고개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지금과 같이 봄이 되어 보리가 고개를 숙이는 ‘보릿고개’가 오면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야 했다. 그중에서 쑥이 가장 좋은 먹거리였다. 시골 어디를 가도 잘 자라있는 쑥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동네 어른을 만나면 “아침 잡수셨습니까? 점심 잡수셨습니까?” 이렇게 인사를 했다. 그때 GNP 100달러, 지금 2만5천달러, 우리나라 정말 잘 살아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교육이 문제였다. 자식 공부를 시키지 않은 부모는 나무 그늘 밑에서 부채질이나 하며 농감(農監)을 했고, 자식 공부시키는 부모는 자식 대신에 농사일을 해야 했다. 돈이 되는 것은 다 내다팔고, 나중에는 소도 팔고 논밭도 팔고, 빚까지 져야 했으니..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故鄕의 하늘 밑에서 / 이수복 빠개진 석류랑/ 실가지 가지마다 쏟아질 듯이 망울지는 빨간 감/ 빨간 감이 먹음은 푸른 하늘밑이/ 긴 유랑 끝에 돌아와 서는 내 마음에는/ 왜 이다지 기쁘냐// 하늘 비치며 하늘밑으로 흘러나가는 시냇물도/ 해지면 낙엽처럼 훗하게 가마귀나 넘나들 뿐/ 깊은 명상 속에 예대로 고요한 산 얼굴로// 긴 유랑 끝에 돌아 와 서는 내 마음에는/ 왜 이다지 기쁘냐// 저 ..
백제 왕릉을 보고 얼마쯤 가면 신작로가 나선다. 이 신작로는 공주서 부여로 오는 길이다. 이 길로 들어가노라면, 조그마한 산 하나가 가로놓여 있고, 그 산 밑으로는 초가, 혹은 기와집들이 연해 있고, 집과 집 사이나 그 부근에는 나무들이 수두룩이 서 있어 바야흐로 우거진 녹음이 새롭게도 보인다. 여기를 처음 오는 사람으로도 '저기가 부여 읍내다.' 하는 생각을 얼른 나게 한다. 사람을 볼 때에는 첫눈에 드는 얼굴이 있다. 첫눈에 드는 얼굴은 그 눈이나 코나 입이나 귀를 다 똑똑히 본 것이 아니고,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아닌 그러한 얼굴이다. 이와 같이 나의 첫눈에 드는 부여는 저 산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다만 그러한 부여만이다. 그리하여, 나는 부여를 처음 볼 때부터 사랑한다. 부여에..
나는 난을 기른 지 20여 년, 20여 종으로 30여 분까지 두었다. 동네 사람들은 나의 집을 화초 집이라기도 하고, 난초 병원이라기도 하였다. 화초 가운데 난이 가장 기르기 어렵다. 난을 달라는 이는 많으나, 잘 기르는 이는 드물다. 난을 나누어 가면 죽이지 않으면 병을 내는 것이다. 난은 모래와 물로 산다. 거름을 잘못하면 죽든지 병이 나든지 한다. 그리고, 볕도 아침저녁 외에는 아니 쬐어야 한다. 적어도 10년 이상 길러 보고야 그 미립이 난다하는 건, 첫째, 물 줄 줄을 알고, 둘째, 거름 줄 줄을 알고, 셋째, 위치를 막아 줄 줄을 알아야 한다. 조금만 촉냉 해도 감기가 들고 뿌리가 얼면 바로 죽는다. 이전 서울 계동 홍술햇골에서 살 때 일이었다. 휘문중학교의 교편을 잡고, 독서, 작시도 하고,..
고향 / 이병기 닭이 자주 울고 산머니 달은 잦고/ 푸나무 들 언덕 상긋한 새벽 바람/ 너무도 익은 이 길에 발도 한결 가볍다// 달은 넘어가고 먼동이 밝아온다/ 누른 보리밭 종달새 소리소리/ 마을의 곤한 잠들은 몇몇이나 깼는지// 어제 선거에는 누가 당선하였을까/ 고샅 고샅에 모이어 수군수군/ 말마다 男女老少가 모두 政客이었다// 고향(故鄕)으로 돌아가자 / 이병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데나 정들면/ 못 살리 없으련 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묶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내 한 生 / 이병기 한몸에 지은 짐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짐을 다 버리고 이리저리 오고가매..
번 역 문 이런 방법으로는 군역을 영구히 벗어날 수 없으므로 온 종족이 재물을 모아 족보를 위조하는데, 성(姓)만 같으면 관향(貫鄕)이 어디인지는 구분하지도 않은 채 부조(父祖)를 바꾸고 파계(派系)를 거짓으로 칭하여 향리에서 으스대며 스스로 반족(班族)이라고 일컬어 윤리를 손상하고 풍속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다가 역을 져야 할 때가 되면 많은 종족이 한꺼번에 일어나 도포를 입고 비단신을 신고서 족보를 안고 관청의 뜰에 들어가는데 족보는 진귀한 비단으로 싸고 장황(粧䌙)이 찬연합니다. 그것을 가져다 살펴보면 모두가 이름난 석학의 후예이거나 훈벌(勳閥)의 후손이므로 수령들은 진위를 구별할 수 없어 일률적으로 면제해 주기 때문에 조금 부유한 백성은 모두 한가로이 놀게 됩니다. 그러나 군액(軍額: 군사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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