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 한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아파트 입구까지 따라왔다. 술 몇 잔 하고 음주면허라도 있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운전을 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불청객을 만나게 되었다. 참, 재수 없는 날이다. “잠시 음주운전 단속이 있겠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후우우욱-” “이런! 술을 많이 드셨네요. 면허정지 수치입니다.” “뭐라고요?”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면허증 제출을 요구하는 경찰관 얼굴을 애처로운 표정으로 올려보았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그의 눈빛에서 묘한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저녁 먹으며 반주로 소주 몇 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게 대리운전을 하시지 그랬어요?” 의례적인 대화였는데 뭐랄까, 텔레파시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분위기가 소주 값이라도 챙겨주면 봐줄 것 같은 느낌이..
대견하게도 대학을 졸업한 나의 큰 딸이 취업전쟁에서 생존했다. 외국계 중소기업이었는데 그런대로 대우가 괜찮아 만족했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자발적인 실업이 많은 세상이라 걱정했는데 큰 짐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자취방을 구해주러 돌아다니는 내내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대단한 무엇을 바라 자식을 키우던가. 이런 소소한 기쁨만으로 양육의 보람은 충분하다. 누구든 누군가의 부모라면 당연히 누려도 좋은 극히 자연스러운 기쁨이 아닐까. 그런데 딸의 회사는 시작부터 자신의 승용차가 꼭 필요한 회사였다. 수도권에 본사를 두었지만 지방에 있는 생산현장을 수시로 왕복해야 하는 부서라 그렇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중고차를 구입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딸의 자가용을 나의..
파랑새 /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는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지까다비 : 일본식 버선 보리피리 /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