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홍배 시인, 클래식 오디오평론가, 영문번역가, 사진작가 1953년 전남 장흥군 용산면에서 태어났다. 2000년 월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단단한 새》 《바람의 색깔》 산문집 《추억으로 가는 간이역》 《풍경과 간이역》 《송가인에서 베토벤까지》 《classic 명곡 205》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이다. 월곶 / 배홍배 모두들 말이 없었다./ 이따금 무거운 침묵위로 고깃배가 미끄러져 들어올 때마다 나는/ 출렁이는 작은 배들의 이마를 다독일 뿐/ 그 흔들림이 내게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저녁 해가 조심스럽게 비켜 가는 몸속/ 허물어질 것들을/ 소금 창고의 물새가 외로움에 가늘어진 말간 다리로/ 받쳐줄 때도/ 갯바람은 황폐한 그리움 밖으로만 불었다/ 돌아오지 않은 배들을 ..
바깥에는 솜털처럼 부풀어 오른 가로수 길 벚꽃들이 자욱하다. 하얀 초롱처럼 나뭇가지에 총총 매달렸던 목련꽃이 불가사리처럼 잎새를 늘어뜨리고 벌써 지고 있다. 조용한 거실에서 아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전화 소리를 들어보면 대화의 상대가 누구인지 대충 가늠을 할 수 있다. 친정의 식구인지, 친구인지, 일상의 일로 대화하는 사람인지 짐작이 간다. 친정 동기(同氣)간에 이야기할 땐 낮고 조용하고 애절하다. 친정 동기 중 맏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갈수록 더욱 짙은 감정을 담아낸다. 근래 들어와서 아내가 부쩍 돌아가신 친정엄마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나이가 드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어려울 때 돈이 요긴 하더라. 돈을 중히 여겨라.'' ''있는 옷만 해도..
가끔 강가에 나가면 낯설지 않은 향수가 물 위에 떠돈다. 먼 지난날의 기억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원초적인 인간의 감성인지 알 수 없는 느낌에 젖어 든다. 강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딘가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조급함도 없고 초조함도 없이 암묵의 언어를 품은 채 긴 시간을 두고 흐른다. 오늘도 수많은 인간의 삶을 담은 역사의 강은 흐르고 있다. 아득한 날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펼쳐질 때 큰 비 내림이 강의 물길을 열었다. 강은 태초부터 인간 삶의 서식처였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 인간이 지구상에 처음 출현해 안전하게 살 곳이 없어 노숙과 동굴 생활을 하다 마침내 강이 가까운 산기슭에 취락을 형성하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 인간 문명이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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