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대회가 매년 한강변에서 열린다. 2014년 첫 대회 이후 정신과 의사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호응 속에 해가 갈수록 성황을 이룬단다. 세상에 별 겨루기가 다 있구나 싶지만, 과부하에 걸린 뇌를 보호하고 잠시 쉬게 하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최 측이 설명한다. 현대사회는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한다. 각종 첨단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려면 그야말로 머리가 아프다. 이럴 때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청하게 앉아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경기인데 이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뭔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호모사피엔스에게 몇 시간이고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 자체가 형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대회가 대구에서 열린다면 나도 한번 도전해..

아버지는 다섯 권의 시집을 남기셨다. 그중 1952년에 발간한 ‘전설’이란 시집은 말로만 듣다가 얼마 전 온 집안을 다 뒤져 겨우 한 권을 찾았다. 아버지 이십 대 초반이니 칠십여 년이 흘렀는가 보다. 육군방공포병학교 정훈부에서 발행했는데 등사판 포켓용이다. 손바닥만 한 것이 누렇게 변색되어 금방 바스라 질 것 같다. 당시 포병학교장이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주역 김계원의 발문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머지 네 권도 정식으로 인쇄는 했지만, 오래되어 많이 낡았다. 어린 시절 나도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과 열정의 부족으로 꿈은 그냥 꿈으로 일찌감치 끝났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시를 찬찬히 음미해가며 정독한 적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시는 대부분, 젊은 내게는 식상한 그저 그런 단어와 발상으..

전다형 시인 1958년 경남 의령 출생.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박사 수료.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수선집 근처』, 『사과상자의 이설』. 제12회 부산작가상 수상. 부산작가회의 부회장, 이사 역임. 한국시인협회 회원. 수선집 근처 / 전다형 구서1동 산 18 번지/ 무허가 간이 수선집이 있었네/ 의수족 아저씨는 십 수년 째/ 주일만 빼고 수선일을 했네/ 나는 팔 부러진 우산을 들고 찾아갔네/ 허름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단골집 돌아서다 어둠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입 간판에게 물었네/ 수척한 얼굴로 속사정을 털어놓았네/ 꺾어진 골목으로 어둠 몇 장 굴러다니고/ 영문을 모르는 바람이 틈새를 드나들고 있었네/ 맞은 편 산뜻한 수선집 미싱 요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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