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시인, 평론가, 번역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작가세계》에 외 4편의 시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7년 김구용에 관한 연구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낯설고 난해한 시풍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전주의자, 당대적이라는 평도 있다. 시집으로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등이 있으며 작가세계 신인상,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이상시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마치 / 이수명 내 마음이 죽은 잎들을 뒤집어쓰고/ 마치/ 죽은 잎들이 서 있다./ 마치/ 꿈을 꾸..
오랜만에 연결된 고향친구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이가 이쯤 되니 이름 부르기가 편치 않다고. ‘선생’으로 부를 처지도 아니니 호號나 아호雅號를 알려 달란다. 과거 선비들이 주고받던 대화를 마주한 느낌이다. 친구 사이에도 예를 지켰던 선인들의 흔적이 가까이 있음에 놀란다. 호나 아호처럼 본디의 이름을 대신해서 불러 주는 이름이 있어서 여유와 멋은 있지만 한편으로 번거롭다 여겼는데, 나에게도 호나 아호에 대한 생각을 해 보라는 벗이 있어 풍아한 이름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호의 유래는 주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우리의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고 한다. 예를 중시한 동양 풍속에 바탕을 둔 지식층의 문화였다. 연세 높은 분께 호를 사용하면 예와 격을 갖추어 드리는 느낌이 든다. 존경받는 지식인의 신분 대변..
보물인 양 아끼던 유화의 작가를 덕수궁미술관에서 그림으로 해후한다. 생존이 궁금해서 가끔 검색 사이트를 살피다가 3년 전쯤에 마음을 접었는데, 바라보는 그림 앞에 우뚝 서 계신 듯 환영이 느껴진다. 반세기 전 은사님이자 이웃사촌이셨던 화가 선생님이다. 마침 주제로 국보급 작품들의 전시를 하고 있다. 1900년부터 1950년 사이, 국내외에서 활동한 우리 미술계 작가들과 작품들, 그리고 문학 예술계의 거목으로 활동했던 작가들과 대표작들이 다채롭게 전시되고 있다. 한 시대의 사회상을 펼쳐놓은 광장이다. 최인훈의 소설 표제 이 주제에 초대되어 시대적 이미지를 아우르며 예술과 소통하고 있다. 20세기 초기의 문예지, 소설, 독립선언문, 영화 포스터, 최승희 무용발표회 포스터, 사진 등 암울했던 시대의 표현 예술..
2월의 어둑새벽, 하늘에 별들이 바들바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때마침 뒷마당에 수탉이 홰를 치며 별을 향해 어서 하늘에서 사라지라며 재촉했다. 멀리서 장단을 맞춘 화답이 하늘에 메아리쳤다. 별은 태양 빛을 빌어 시나브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스스한 새벽어둠을 뚫고 나선 길, 어머니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자전거에 발을 맞춰 걸었다. 온전히 잠을 떨치지 못한 모자母子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목에 감긴 목도리를 풀어서 내게 감싸주려 했다. 나는 머리를 살짝 틀어 피했다. 겨울만 되면 손가락 끝이 갈라져 연고를 바르는 어머니, 그 모습을 보면 늘 가슴 아팠다. 어머니는 읍내 상설시장 난전에서 채소 벌이를 했다. 시골 장날을 찾아 채소 장사를 떠나던 그 날도 어머니 손끝은 성한 곳이 없었다. 나는 전날 미..
누구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찬 언덕에 지푸라기 깔고 누워 하늘을 양껏 봅니다. 저 홀로 하늘을 향해 우뚝 버티고 선 미루나무가 고독합니다. 십여 년 넘게 다닌 직장을 달랑 A4용지 한 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배낭 하나, 오랫동안 비워둔 내 마음의 빚 스케치북까지 챙겨 가는 뒷길에 정류장까지 딸아이 손잡고 슬픈 눈으로 따라나서는 집사람에게 미안합니다. 알 듯 모를 듯 웃어 준다는 게 그만 슬픈 여운만 남기고 맙니다. 어디 갈 거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습니다. 문득 고향 마을이 떠올랐지만, 부모님은 물론 홀로 남은 형수마저 떠나버린 고향은 아득한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난 어디로 가야 할까?’ 터미널서 한참을 망설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해가 궁금합니다. 그래! 서해로..
김참 시인 1973년 경남 삼천포(현 사천)에서 태어났다. 인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인제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 여행』, 『그림자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이 있다. 현대시동인상,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지리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인제대학교, 동의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지난여름 / 김참 천둥치는 날들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슬레이트 지붕에서 빗방울이 끝없이 떨어져내렸다. 나무들은 흠뻑 젖었고 비 맞은 비둘기들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거실 피아노의 하얀 건반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귓속으로 음악이 흘러들어왔다. 생선 뼈다귀를 문 검은..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한 그림 앞에 섰다. 백발을 흩날리며 눈을 부릅뜬 늙은 여인의 그림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여자의 일생’이라는 말이 나왔다. 가슴과 얼굴은 그녀의 살아온 자국처럼 온통 검버섯으로 덮여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그 무엇이 목줄을 타고 위로 올라오지만 입은 꽉 다물고 있다.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그것은 다시 코로 올라가고 눈으로 갔다. 피눈물이 맺힌 눈과 흐르는 피를 막지 못하는 코가 대신 말을 한다. 그림은 여인의 자글자글한 주름의 세월만큼 참아 온 한을 담고 있다. 그녀의 표정을 빌어 작가는 세상의 아픔을 얘기한다. 그 그림을 그린 김성룡. 나는 그를 미친놈이라 부른다. 십여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반 미친 것처럼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그림을 우연히 보고 반년에 걸..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 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서기 1300년대에 나옹선사가 남긴 선시다. 선(禪)은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이다.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이 시대에 이 같은 선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선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작품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옹선사가 내가 태어난 영덕에서 나셨다는 그 사실 만으로 특별히 애착을 갖는다. 그야말로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다. 나옹선사(1320~1376)는 고려 말 예주부에서 출생했는데, 예주부는 지금의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다. 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공민왕의 왕사이기도 했다. 나옹왕사로 불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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