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 시인 1971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지만 이사를 자주 다녔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1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 〈항구〉외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침소밴드 리드보컬, THE ASK 멤버로 활동했다. 2015년 제4회 시로여는세상 작품상, 제16회 현대시작품상, 2017년 제3회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시집으로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키스』, 『활』, 『귀신』, 『백치의 산수』,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 『커다란 하양으로』 등이 있다. 아침의 시작 / 강정 어젯밤엔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그림자가 죽었다/ 문지방 앞에서 흘러내린 어둠엔 꽃냄새가..

제4회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붉은 꽃무리가 해마다 늘어간다. 엄지손톱만 한 반달 모양의 녹 하나하나가 햇빛을 받아 선연한 핏빛을 반사한다. 흙 한줌 물기 한 방울 없는 곳에서 피는 꽃의 생명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골집 어두운 광에는 낡은 대나무 소쿠리가 오래전부터 놓여 있다. 그곳에 담긴 물건은 대부분 50년 전 아버지가 집을 지을 때부터 썼던 도구들이다. 육지로 나서면 자잘한 것들에 불과 하지만 섬에서 살려면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다. 소쿠리에 담긴 괭이, 호미, 부엌 칼, 낫, 쇠톱, 못 등은 쓸모없어지면 외면당한다. 그렇더라도 버리거나 버려질 수 없다.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길이는 한 뼘 정도이고, 손잡이는 동백나무이고 칼은 줄톱을 갈아 만들어졌다. 생전에 아버지는 그 칼을 허리춤에..
배가 밀려난다. 썰물과 하늬바람이 배를 물목으로 몰아붙이면 뱃사람들의 '어기여차' 힘을 쓰느라 소리가 높아간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대를 물려 노를 젓는다. 목소리도 물려받는다. 섬에서 노 젓는 일은 일상이다. 섬 아이들은 뭍에서 노는 것보다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도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처럼 그들은 덴마를 타고 논다. 덴마는 경상도 전라도 방언으로 본래는 전마선(傳馬船)이라 부른다. 배의 크기는 6미터 남짓, 육지로 이동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가까운 섬과 섬을 이동할 때 이용한다. 덴마를 움직이는 것은 서양식 주걱 노가 아니라 전통 노이다. 덴마는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라 보트에 사용하는 서양 노로는 배를 움직일 수 없다. 전통 노로 ..

내가 학교라는 곳을 가서 처음 배운 것은 ‘앞으로나란히’와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였다. 앞사람의 뒤통수를 지켜보며 두 손을 들고 내 위치를 맞추려 긴장하였다. 저만큼에서 줄이 좀 굽었다 해도 그것은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앞사람의 뒤통수가 잘잘못의 기준이 되었다. 모든 생각은 ‘나’에서 시작하지 않고, 앞에 있는 친구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학습이란 것을 시작하면서, ‘우리’라는 말을 가장 먼저 익혔다. 나만의 생각과 고민을 해결하려는 학습이 아니고 매사는 공동체인 ‘우리’에서 출발하였다. 그런데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초등학교 일학년 교과서의 첫 쪽에는 ‘푸른 하늘’에서부터 시작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푸르다’와 ‘하늘’을 교사는 어떻게 설명하였을까. 참으로 엄청난 변화다.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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