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침침해지지만, 그 사물의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깊어지는 것일까. 얼마 전 동피랑 마을을 찾았다. 왜 갑자기 그곳 언덕 가파른 마을을 올라가볼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마 봄 햇살이 따스해서였을 것이다. 동피랑은 이름 그대로 ‘동쪽 벼랑’이라는 뜻이다. 통제영(統制營)의 동쪽 바다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포가 설치되었던 언덕 꼭대기가 동포루(東砲樓)이다. 시에서는,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낙후된 이 마을을 철거한 뒤 동포루를 복원하고 언덕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즈음 한 시민단체가 발 벗고 나서서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고, 전국의 미술대학생과 일반인들이 모여 담벼락과 축대에 벽화를 그렸다. 그 후 관광명소로 탈바꿈하..
- 잠결에 놀라 잠결에 놀라 시계를 본다. 벽에 걸린 직사각의 전자시계는 빨갛게 충혈된 숫자만을 보여준다. ‘2;45’ . 방안에 걸린 것이라기보다는 저자거리의 전광판 같다. 무심한 것 같으니라고. 그 숫자만으로는 일어날 시간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비몽사몽에 공간 지각력이 무딘 나로서는 선뜻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돌아누워 협탁의 낡은 탁상시계를 다시 본다. 길고 짧은 두 개의 바늘이 연두색 형광빛을 조심스레 발한다. 모세혈관인 양 가는 눈금들로 나뉘어 있다. 두개의 바늘과 촘촘히 나뉘어진 금들은 몇 시간을 더 자도 되는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제서야 안도한다. 셈하기에 손가락을 동원하던 유년의 수준이다. 이제부터 더 잘 것이다. 그러나 잡다한 생각에 잠은 멀리 달아났다. 돌아오기..
김혜천 시인 서울 출생, 2015년 《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푸른문학상 수상. 윤동주서시문학상 제전위원,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조계종 12기 포교사. 적정(寂靜) / 김혜천 마방이 잠시 먼 산을 쳐다보는 사이/ 꽃 한 송이// 떨// 어// 진// 다// 천 길 협곡/ 몽롱하게 멀어지는 방울소리// 오색 술 달린 안장을 상으로 받은 날이다// 피멍으로 짊어진 모차와 소금/ 모봉을 넘을 때 마다 하나 씩 빠지는 발톱/ 각혈로 얼룩진 차마고도/ 그 길에서/ 시시때때 다짐했다/ 호시탐탐 노렸다// 등짐으로 닿을 수 없는 그곳/ 명성으로는 더 멀어지는 그곳// 벗어버리자/ 죽음만이 완성이다// 바람의 변주를 타고/ 오방색 춤사위/ 허공을 훠이훠이 젓는다// 폐허에서 오는 봄 / 김혜천 위태로운 발상은..
내 나이 열 넷, 산벚꽃이 아름다운 봄날에 직소폭포와 처음 만났다. 전깃불 대신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에도 자신을 몰입시키던 순박한 소녀였을 때였다. 그 폭포를 보며 상상한 것은, 전설 속의 인물, 한 많은 여자와 그 용소에서 죽은 남자들이었으며,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열 두 타래의 실을 풀어 그 깊이를 알아보고 싶어했다. 그 때의 내게 폭포는 전설을 품은 자연의 일부였다. 내 나이 스물 셋, 녹색 이파리들의 광합성이 한창일 때, 직소폭포와 두 번째 만났다. 그 때 내 옆에는 신록같이 푸르른 한 남자가 있었다. 자연과 사람과 그들이 꾸는 꿈까지 초록빛이었을 때의 직소폭포는 자신만만하게 내달리는 일직선의 물줄기였다. 한 인간에게 향하는 감정이 직선적이던 시절, 내 삶도 직소폭포처럼 힘차게 흘..
내 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이병헌처럼 멋지지도 않고 전유성 같은 유머와 위트를 지니지도 못했다. 타이거우즈마냥 신의 기술을 훔친 남자는 더더욱 못된다. 약간 화통한 것 같으나 좁쌀뱅이 남자다. 그래도 나는 그 남자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물어볼 줄 아는 남자였으면 했다. 희끄무레하고 누리끼리하며 푸르뎅뎅하고 불그스름한 세상을 볼 줄 아는 남자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름과 차이가 만들어가는 다양성이 내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남자이기를 소원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아이디어를 찾는 남자라면 대길이었다. 하지만 그 모두는 허황된 바람이었다. 그 남자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융통성 없이 따지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과거로만 문을 열고 닫으려고 할..
번 역 문 내 나이 쉰네 살에 오른쪽 잇몸 첫 번째 이가 아무 이유 없이 흔들리니 통증을 견딜 수 없기에 의원에게 뽑게 하였다. 느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쓴다. 내 나이 세 살에 네가 처음 나서 내 입의 빗장이 된 지 오십여 년이구나, 분쟁과 우호가 너에게 달려 있었고 음식의 맛을 너를 통해 알았지. 내가 한창 강건할 때는 너 역시 튼튼해서 말린 고기와 딱딱한 떡도 칼처럼 잘랐었다. 내가 항상 옥보다 더 귀중히 여겨 이불을 물어뜯지도 돌로 양치하지도 않았지. 원 문 吾年五十四, 右車第一齒無故動搖, 痛不可忍, 令醫拔之, 感而有作. 吾生三歲, 汝始生焉, 爲我口關, 五十餘年. 興出戎好, 職汝所爲, 酸鹹甘苦, 由汝得知. 吾方強健, 汝亦堅牢, 乾肉勁餠, 截之如刀. 吾常寶愛, 不啻珙璧, 不曾嚙被, 不曾漱石. -..
허갑순 시인 전남 순천 출생.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시와 산문》으로 문단에 올랐으며, 제2회 서울시인상, 제4회 국제한국본부광주펜문학상, 제16회 광주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꿇어앉히고 싶은 남자』, 『나를 묶어주세요』, 『그저 꽃잎으로 번져나갔다』, 『강물이 흐를수록 잠은 깊어지고』, 『상처도 사랑이다』, 『나무들』, 『나무들2』와 평론집 『현대시의 시간과 공간인식』, 『현대시와 낭만적 층위』가 있다. 전 조선대학교 동신대학교 외래교수 현 한국연구재단연구원. 님이시여 / 허갑순 그대 그리는 마음 날 주고 가소/ 내 목숨 끝나는 날까지/ 그대 향한 그리움 여기 벗어두고 가면/ 행여 떠난 길 되돌아올 줄 모르는데/ 봄 그리워 그리워 하다가/..
컴퓨터 모니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바꾸고 나니 진료실이 달라 보였다. 큼지막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TV밖에 모르던 놈이 대형스크린 앞에 선 것만큼이나 마음이 들뜨기까지 하곤 했다. 물론 오래 가지 않을 얄팍한 감정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교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엔 그랬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도 만족해하는 눈치는 마찬가지였다. 번거로이 고개를 쭉 빼고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 쉬이 병변을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잠깐이긴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보면 뭔가 내 쪽에서도 변화를 줘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압박감 같은 것이 피어오르곤 한다. 해서 나는 묵은땅을 갈아엎는 봄날 농부마냥 모니터의 배경화면부터 갈아치우기로 마음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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