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인 시인 1956년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와 편저서로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지훈상 등을 수상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쳤다. 김사인 시인, 창비가 주는 '만해문학상' 거부 - 스트레이트뉴스 김사인(59) 시인이 창비가 주관하는 제30회 만해문학상(상금 2000만원) 수상을 사양했다. 1973년 만해문학상이 제정..
어제인가 그 여자는 나에게 자기의 유년시절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이야기했다. “화창하게 맑은 날 한낮 때쯤에 뒷산 앞산 소나무 숲속으로 낙엽을 긁으러 갔어요. 쇠갈퀴하고 멱서리를 가지고, 어른 나무꾼들을 따라서, 아마 내가 여섯 살 되던 해의 늦은 가을이었을 거예요. 멱서리를 무덤 앞에 놓아두고 숲속에 들어가서 낙엽을 한 줌씩 긁어가지고 와서 멱서리에다 담곤 했어요. 낙엽이 멱서리 시울까지 차올라왔을 때 그것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 낙엽을 담은 멱서리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끙끙 안간힘을 쓰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왔어요. 우리 집 사립에 막 들어서니까는 어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땔나무 많이 해오는 것 좀 보소! 하고는 그 멱서리를 받아들었어요. '아니, 무슨 놈 갈퀴나무 조금 담은 ..

한 겨울날 아침 일찍이 어머니는 김 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엘 갔다. 중학생인 나를 앞세운 채 시오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김을 팔아 내 등록금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장들이 덮여 있었다. 금방 함박눈송이를 쏟아놓을 것 같았다. 장바닥에 김을 펼쳐놓았다. 가능하면 빨리 그것을 팔아넘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른 김은 눈비를 맞으면 망치게 되는 상품이었다. 어머니는 점심때가 가까웠을 때 한 상인에게 통사정을 하여 김을 넘겼다. 등록금과 차비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나서 어머니 주머니에 얼마쯤의 푼돈이 남았을까. 그 푼돈은 가용으로 써야 할 터이다. 이제 어머니와 나는 헤어져야 했다. 나는 장흥행 버스에 올라야 하고, 어머니는 고향 집으로 걸어서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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