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화 시인 1974년 전라남도 나주시 명하쪽빛마을에서 태어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했다. 200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우리의 야생소녀』, 『모두의 산책』이 있다. 詩川 동인. 손금을 풀다 / 윤진화 당신이 이생에서 지금껏 연주한 가락이 들리거든요/ 손금도 악기 같아서/ 대금, 중금, 소금처럼 가로 불지요/ 당신의 비가(悲歌)는 끝이 없군요/ 휘몰아치는 장단이 꽤 오래됐어요/ 협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쉴 곳이 없어요/ 바람이 쉴 곳이 없으니 푸른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아요/ 나뭇잎이 신명에 겨워야 휘파람새가 몰려오고, 사람이 와요/ 당신에게선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죄다 죽은 영(靈)이..
실금이 가 있다. 들었다 놓을 때마다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귀에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디선가 자주 들어 본 소리다. 자배기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테두리에 감겨있는 철사가 녹슨 걸 보면 금이 간지도 오래되었나 보다. 사연 있는 이 장독대에 나이 먹지 않은 것은 없다. 큰 독, 작은 독, 멸치 젓국 냄새가 배어 있는 독과 소래기, 자배기, 구석에 숨겨둔 약탕관까지 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나이를 먹었을 게다. 간장 수십 독은 퍼냈음직한 아름드리 장독에서는 여전히 진한 짠내가 난다. 대가족 둘러앉은 밥상 냄새가 거기에 있다. 도시로, 외국으로 돌다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외가 가까운 동네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어릴 때 방학이면 외가에 와서 지낼 때가 많아서 외가에 대한 추억이 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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