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호 시인 1981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방독면』, 『홍대 앞 금요일』이 있다. 나의 투쟁 ㅡ컨베이어벨트 / 조인호 아버지는 정말 유태인이었나// 독일 나치당원이 유태인에게 채운 표지처럼/ 한쪽 팔에 완장을 차고서야 알았다/ 장례식장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아우슈비츠의 독가스 같다는 것을,// 새벽녘 장례식장 밖 세상의 모든 공장들이 전자레인지 불꽃만큼 소리 소문 없이 뜨거워지네 삼교대 돌아가며 야근하는 공원들의 어깨가 롤러만큼 자꾸만 둥글어지네 검은 밤이 컨베이어벨트같이 흐르네 화장터의 굴뚝은 점령당한 파리의 에펠탑보다 높았을까 한 삽의 석탄처럼 불길 속에 아버지를 던져넣는 가혹한 노..
길은 길어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길’에 나오는 길을 떠올리면 너무나 길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잘름거리며 가는 길. 하룻길이 긴 날은 욕망이 분출하던 서른 무렵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한하운의 황톳길을 걷는다. 이드와 슈퍼에고의 충돌로 흔들리는 자아가 뙤약볕 붉은 길에서 헤맨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길이 더욱 길게만 느껴진다. 여행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가는 길, 옛날 한성에서 삼남으로 이어지던 기나긴 길에 천안삼거리가 있다. 천안삼거리를 지나는 그 길은 너무나 멀어서 막걸리에 국밥까지 준비된 주막이 있었다. 주막 옆으로는 우거진 능수버들이 그늘을 만들어 ..

운동장 한쪽에 일면식도 없는 두 사나이가 마주 섰다. 거리를 질주하면서 땀 흘리고 고통을 받아들일 각오가 서린 표정이다. 지역적으로 북쪽인 강원도와 남쪽 제주를 대표한다. 마라톤이라는 매개체가 L과의 만남을 이어 줬다. 그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공직에 있으면서 앞만 보며 달렸다. 오십 고개를 넘고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래서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시작한 운동이 마라톤이었다. 나이는 나 보다 두 살 위다. 2003년, 한참 마라톤이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는 시기였다. L은 강원도청 마라톤 동호회 ‘강마회’ 회장을 맡아 조직 활성화에 정성을 쏟고 있다. 나 또한 제주도청 마라톤 동호회 ‘도르미’를 그해 창단하여 삼 년간 회원 확보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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