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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9

054 [전주교구] 여산 하늘의 문 성당 여산 성지는 무진박해(1868) 순교지다. 치명일기(致命日記)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5명에 이른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사형(白紙死刑: 얼굴에 물을 뿜어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 시키는 처형법)으로도 죽임을 당해 가혹한 처형으로 유명했다. 숲정이, 백지사터, 배다리 및 뒷말 치명터, 기금터, 옥터, 동헌 등은 사전 정보 습득 부족으로 둘러보지 못하였다. 2022. 6. 6.
053 [전주교구] 천호 성지 천호(天呼) 성지는 천호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병인박해(1866)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인 네 분(이명서, 손선지, 정문호, 한재권)과 같은 해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 열 명이 묻혀있다. 천호산 일대에는 총 7개의 공소가 있었고, 골골마다 유서 깊은 수많은 일화가 전한다. 이른 아침에 수백km를 달려 여러 곳을 순례하면서 도착한 천호 성지. 부지가 넓어 걸어서 둘러보는데 시간적 여유가 빠듯해 자세히 살펴보지 못 하였다. 2022. 6. 6.
052 [전주교구] 초남이 성지 초남이는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유항검의 생가터다. 1754년 초남리에서 태어난 유항검은 1784년 세례를 받고 윤지충[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절대적으로 공헌하였다. 신유박해(1801) 때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먼저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고 그해 10월 전주에서 능지처참 순교하였다. 집터는 파가저택(破家瀦宅: 집을 허물고 연못을 만드는 형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46세였다. 연좌형으로 그의 가족들이 전주에서 순교하였다. 이들의 시신은 1914년 전주 치명자산으로 이장되었다. 초남이 성지의 수녀님께서 유항검이 운영한 교리당 터가 인근에 있으니 꼭 가보라는 당부 말씀이 있었기에 다녀왔다. 건물은 들어섰으나 주변 환경은 정비 중이었다. 유항검이 운영했던 인근의 교.. 2022. 6. 6.
051 [전주교구] 김제 순교 성지 김제 순교 성지는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의 순교를 기념하는 곳이다. 한정흠은 김제의 가난한 양반 출신으로 유항검 집에서 자녀들의 가정 교사를 하다 천주교를 접하고, 세례를 받은 뒤에는 교회 일에만 전념했다. 신유박해(1801) 때 유항검과 함께 체포되어 전라 감영에서 혹독한 심문과 형벌을 받은 후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 후 김제 동헌으로 이송되어 1801년 8월 김제 장터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당시 45세였다. 현재 주차장이 된 순교터에 갔으나 표석을 찾지 못했다. 요촌 성당에서 순교비만 보았다. 2022. 6. 6.
050 [전주교구] 전주 숲정이 성지 ‘숲정이’는 ‘숲머리’라고도 하는데 숲이 울창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 군사훈련장이었는데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신유박해(1801) 때 유항검 가족 4명이, 기해박해(1839) 때 5명의 복자가, 병인박해(1866) 때 6명의 성인이, 1867년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여 박해 내내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았다. 현재는 성지터와 성인 이름을 딴 윤호관 체육관이 있으며 1984년 전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2022. 6. 6.
049 [전주교구] 전동 순교 성지 전동 순교 성지는 신해박해(1791) 때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해박해(1801) 때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과 윤지현, 유관검, 김유산, 이우집 등이 순교한 곳이다, 전동 성당은 바로 그 순교터에 세워졌다. 설계는 프와넬 신부가 하고 주춧돌은 전주성 성벽을 헐어 낸 돌로, 벽돌은 중국인 기술자가 직접 구워 올려 세웠다. 1981년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보수공사(2020.5.4.~2022.7.18.)가 진행 중이었다. ====================================================== 2022. 6. 6.
048 [전주교구] 서천교·초록바위 서천교는 1866년 조윤호 요셉 성인이 18세의 나이에 장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초록바위는 남종삼 성인의 아들 남명희와 순교자 홍봉주의 아들이 순교한 곳이다. 이들 두 사람은 나이가 14살이어서 당시 국법으로 15세 미만의 소년을 사형에 처할 수 없어 나이가 찰 때까지 1년 옥살이를 시킨 후 교수형으로 처형하여 시신을 전주천에 밀어 넣었다. 서천교는 지도를 자세히 살피지 못해 싸전다리와 매곡교만 보았다. 집에 돌아와 지도를 확대해 보니 싸전다리 동쪽에 서천교가 있었다. 자책했다. 서천교는 매곡교에서 서쪽으로 더 내려가야 하는데, 순례 당시 몰라 찾아가지 못했다. 2022. 6. 6.
047 [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치명자산은 전주 한옥마을 동남쪽 가파른 산등성 일대를 이른다. 산기슭 능선부에 신유박해(1801) 때 순교한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가족 6위가 합장된 묘가 있다. 당초 승암산이라 불리던 곳을 전동성당을 완공한 보두네 신부가 1914년 순교자 가족 합장묘를 조성한 후 치명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치명자(致命者)는 ‘목숨을 바치는 자’라는 뜻이다. 2022. 6. 6.
046 [전주교구] 전주 옥 터 조선시대, ‘전주 옥(獄)’에는 박해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와 심문과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순교한 곳이다. 기해박해(1839) 때는 열두 살의 이봉금(아나스타시아)이 교수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옥은 고통스러운 곳이었지만, 신자들에게는 기도처였고 신앙을 증언하는 곳이었다. 이제 옥(獄)은 사라지고 이곳에 한국전통문화전당이 들어섰다. 예전의 옥 터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만 무심히 서있을 뿐이다. 2022.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