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시인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시집으로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가 있다. 김춘수문학상,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계간 《시와 시》 편집장. 귀가 부끄러워 / 이은규 그늘진 쪽으로 몸이 기운다/ 모든 사랑은 편애// 제철 맞은 꽃들이/ 분홍과 분홍 너머를 다투는 봄날/ 사랑에도 제출이 있다는데/ 북향의 방 사시사철 그늘이 깃들까 머물까/ 귀가 부끄러워, 방이 운다 웅-웅/ 얼어붙은 바닷속 목소리// 철도 없이 거처를 옮겨온 손이 말한다/ 혼자 짐 꾸리는 것도 요령..
주변은 관계의 망으로 엮여 있다. 사는 일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망이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현상의 연속인 것 같다. 한해를 닫으며 몇 개의 새로운 망이 형성되었다. 좀 더 장기적인 결속을 다져보자고 뜻을 합친 결과다. 굳이 이탈할 명분이 없을 때 발을 슬쩍 걸쳐놓게 된다. 연륜을 더할수록, 사회 활동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이 망의 폭도 비례하여 확장되는 걸 실감한다. 이 망에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썩 친숙하지 않다거나 거리를 두게 되는 사이도 함께한다. 마음이 편하게 기우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언제 보아도 격의 없이 반가운 사이가 있고, 만나는 횟수가 뜸해지며 시나브로 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자신이 소속된 망에 대한 애착 여부가 아닌, 구성원 간 ..
제12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만灣 - 만나고 굽어지다 물마루가 밀려온다. 둥근 띠를 이루는 파도의 능선이 아래로 꺼졌다 위로 솟구친다. 바람을 따라 공중으로 물보라를 뿜어 올리다, 방파제에 부딪쳐 포말로 흩어지기도 한다. 사납게 내달리던 파도는 만灣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진다. 파도는 과감하게 경계선을 넘어온다. 무방비로 서 있던 해안선은 뒷걸음치며 물러나지만 소용없다. 바다는 기어이 빈틈을 찾아내 자리를 만들어간다. 물굽이의 시작은 그랬을 것이다. 역동적인 바다는 제 몸피를 육지의 가슴속 깊이 밀어 넣었고, 망설이던 육지는 둥글게 몸을 말아 껴안았을 것이다. 만의 탄생이다. 어느새 훅 들어왔더라는 지인의 말처럼 그도 그렇게 내게로 왔다. 처음 만난 건 친구의 하숙집에서였다. 같은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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