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인 시인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가톨릭대 국문과 졸업. 한양대 국문학 박사. 2001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가 있다. 제7회 형평문학상, 제1회 시인광장 시작품상 수상.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감자', '배따라기'를 쓴 소설가 김동인의 손녀이기도 하다. 최선의 삶 / 김경인 그는 제법 잘 걷게 되었다/ 무릎 아래를 잡아당기던/ 길이 모두 사라진 후에// 지갑을 열고 하루치의 어둠을 지불했다/ 너는 누구냐? 매번 같은 질문으로/ 뒤꿈치를 끌어당기는 그림자에게// 오늘은 쑥쑥 낳는다 하루치 계단을/ 맘만 먹는다면 백 개도 이백 개도 낳을 수 있단다/ 그로부터 집..
감은사지 주차장에 왜소한 할머니 두 분이 앉아있다. 그을린 얼굴에 풋것을 뜯고 다듬느라 손톱 밑은 시퍼렇게 물이 들었다. 올망졸망 바구니에 담긴 것이라야 쑥 달래 머위 원추리가 있고 작은 유리병에는 누런 된장이 담겨있다. “나물 사 가이소”라는 할머니 말씀을 귓전에 얹고 폐사지를 둘러본다. 역병으로 찾는 발길이 뜸한데도 맥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한 할머니가 서른여섯 해 전 이승의 끈을 놓으신 어머니로 겹쳐진다. 오래 길들어진 탓인지 된장을 유독 좋아한다. 그것도 어머니가 담았던 그런 된장이 입에 맞는다. 대가리와 똥을 떼어낸 다시 멸치 대여섯 마리에 어슥어슥한 썬 무, 청양고추, 대파에 된장 한 숟갈을 넣고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찌개는 매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게다가 상추쌈이나 풋고추도 들척지..
소면은 뜨거운 물을 만나자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어낸다. 앞다투어 구부러지며 곡선의 여유로움이 넘친다. 달라붙지 않게 연신 휘휘 저으며 동심원을 그린 후 얼른 찬물에 담근다. 흐르는 물에 두 손으로 면을 비비고 또 비빈다. 뿌연 물이 더는 나오지 않을 때까지 헹궜다가 건져 올린다. 한 손으로 국수를 사려 채반에 담는다. 동그랗게 말아 놓은 사리는 어느새 수분이 빠지고 말라간다. 투박한 면기에 사리를 얌전히 앉히고 팔팔 끓는 육수를 부었다가 따라내기를 반복한다. 물은 온 힘을 다하여 면 사이사이로 들어간다. 뭉쳐있던 면은 풀어지면서 국수 가닥이 탱글탱글하게 살아난다. 토렴 중이다. 집에서 잔치국수를 해 먹을 때는 고집스럽게 꼭 토렴한다. 서두르면 국숫발이 냄비 안으로 쏠리기가 일쑤다. 또한, 천천히 하다..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