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륭 시인 196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본명 김영건. 신문사 기자로 일하다가 2007년 《강원일보》,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살구나무에 살구 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와 청소년시집 『사랑이 으르렁』,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별에 다녀오겠습니다』, 『엄마의 법칙』, 이야기 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 『앵무새 시집』, 동시 평론집 『고양이 수염에 붙은 시는 먹지 마세요』, 그림책 『펭귄오케스트라』 등을 펴냈다. 1988년 불교문학 신인상, 2005년 월하지역문학상,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제9회 지리산문학상, 제30회 경남아동문학상, 제5회 동주..
갈바람 말미에 선생의 육성이 들린다. 끝없이 울리는 소리에 눌리어 더 이상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는 대하소설 『혼불』*의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는 공간을 채웠다. 잠깐 서성이는 동안 나의 심장이 빨라졌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생전 육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요하게 퍼지는 선생의 메아리는 어쩌면 우리 모국어에 대한 신비한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듯했다. 칼바람이 일어나는 한 겨울밤 걸음을 옮기며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달이 기울도록 방문을 활짝 열어둔 선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처음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모 라디오방송국의 어떤 프로그램에서였다. 진행 중인 DJ는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만 17년간 오로지 대하소설 『혼불』에 온 정..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인 줄 알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멍해졌다. 억새만 서걱대던 마음 밭에 금세 봄풀이 산들댄다. 무서운 게 정이라 했던가. 애증도, 희비도 때로는 꼬이고 엇갈리는 게 인생사인가 보다. 어린 시절 네댓 살 위의 누나를 둔 친구가 둘 있었다. 두 처녀는 닮은 데가 많았다. 같은 또래로 맏딸에다 여고 졸업 후 가사를 돕기 위해 상급 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서로 라이벌 의식도 강했다. 소처럼 일했고, 동생들 공부도 가르쳤다. 친구가 부러웠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척스러운 그들도 어느새 혼기가 찼다. 번듯한 신랑감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어느 날, 중매쟁이가 A 처녀 집을 찾아 마을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B 처녀 집으로..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