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목멱산에 올랐다. 산의 높이는 수천 길이요, 서북쪽으로는 백악산(白岳山), 삼각산(三角山), 인왕산(仁王山)의 여러 산들이 바라보이는데 높은 산들이 모여서 하늘에 서려 서로 읍하는 듯 서로 껴안는 듯하다.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의 뻗어 나온 산기슭이 구불구불 내려가 남산과 합하였다. 산등성이를 빙 둘러서 성가퀴와 망루가 있어서 종소리와 북소리가 서로 들린다. 이 성안의 지세는, 가로 10여 리, 세로는 그 3분의 2가 된다. 이곳에 종묘사직, 궁궐, 곳집, 창고, 성균관, 정원이 다 들어서 있다. 그 외에 고관대작과 온갖 벼슬아치들의 관아이고 그 나머지는 수만 채의 가옥, 수백채의 가게, 수십 개의 저자거리이니, 이 모든 것이 또렷하게 손바닥 안에 있는 듯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옛 주나라 수도..
김이강 시인 1982년 여수에서 출생. 한양대학 국문과 졸업 동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200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타이피스트』가 있음. 제2회 혜산 박두진 젊은 시인상 수상.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 김이강 1/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당신은 말한다 조용한 눈을 늘어뜨리며// 당신은 가느다랗고 당신은 비틀려 있다// 그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가만히, 당신은 서 있다 딱딱한 주머니 속으로/ 찬손을 깊숙이 묻어둔 채 한동만 오래/ 그 자리에 그래도 서 있을 것이다/ 행인들에게 자꾸만 치일 것이고/ 아마도 누구일지 모르는 한 사람이 되돌아오고/ 따뜻한 커피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겨울이 갔..
갓 태어난 손녀는 첫 눈에 제 어미를 닮았다. 며칠 후에는 반드러운 얼굴선이며 아이한테서도 보이는 함초롬한 분위기가 제 외할머니까지 닮아있다. 외탁을 한 것이다. 솔직히 나는 흡족했다. 딱히 밉단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처진 눈, 툭진 볼 살, 짱구와 곱슬머리의 내 얼굴이 내 맘에 안 들었다. 거기다가 쓸데없이 튼튼한 다리통도 영 못마땅했다. 큰아들이 그만 나를 닮았다. 예닐곱 살이었나. 아들을 목욕시키던 남편이 너 꼭 엄마 닮았다고 하니 “아빠, 엄마 목욕시켜 봤어요?” 하더란다. 막연히 나와는 다른 생김새에 호감이 가곤 했다. 당연히 외까풀의 가늘가늘 초강초강한 며느리가 내 맘에 들었다. 못 본 사이 훌쩍 자란 손녀는 낯이 선 할머니 앞에서 잠시 쭈뼛거렸으나 이내 표정을 풀고 안겨왔다. 살빛 뽀얀 ..
회의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떨어지는 매출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막내아들의 전화였다. 평소 전화하는 일이 드물어서 다급하게 느껴졌다. 회의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최근에 취직한 곳에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며 흥분하고 있었다. 밀린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당황스러움과 자괴감으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치미는 화를 누르고 회의가 끝나면 전화하겠다고 했다. 막내는 자기주장이 강했다. 대학 전공학과 선택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 종교학이다. 그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어떤 대학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전공은 평생을 가지고 가는 것이니 잘 판단하라고 했다. 종교학을 전공해서는 신자유주의가 큰 물줄기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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