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시인 1968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태어나 시립인천전문대학(현 인천대학교 제물포캠퍼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문예중앙》에 시 〈화문석〉 외 9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200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가 있다. 지훈문학상, 송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백교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궁합 / 유종인 세상에 나와 맞는 게 정말 있을까/ 때 아닌 걱정을 하게 됐을 때/ 전통 정원 뒤편의 대숲이 눈에 들어찬다/ 바람에 비스듬히 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푸르른 마디들/ ..
제16회 바다문학상 수상작 해류와 조류, 고래는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의 바다에도 엄연히, 면면하게 존재한다. 그날의 마음자리와 결에 따라 사그라지거나 분진처럼 풀썩이는 희. 노. 애. 락이 고래의 초음파 신호음을 보내며 조수처럼 들락거리고, 삶의 방향과 무게 질량은 암초 마냥 암묵한다. 삶을 맘대로 요리하고 지휘하는 마음의 심지心志가 판단하고 선택하고 조율하는 대로 삶이 펼쳐진다며, 천형 같은 화두를 삶의 심해에 풍덩, 던진다. 섬찟하다. 새끼를 낳아 젖을 먹이고, 먹이를 탐색하고, 장애물과 해저의 지형을 파악해서 무리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혹등고래 노랫소리가 뱃고동처럼 구슬프다. 구가한 사랑이 홀연 떠나버린 것일까. 내 맘속에도 뱃고동이 울린다. 울컥해진다. 700만 년 전 태어난 인간이 700..
풍광들이 정겹다. 긴 세월을 그리 해 왔듯 몇 가구의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고, 끝집 옆으로 잘 자란 밭작물이 옹기종기 햇빛 바라기에 여념 없어 보인다. 갯내를 가득 품은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어느 사이 작은 어선 몇 척을 춤추게 한다. 길 위로 야트막한 야산의 늙은 소나무 한그루가 무심히 나를 바라본다. 가 봐야지 하면서도 연고가 끊긴 탓에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소녀에서 이제는 희끗희끗한 흰머리 여인이 되었어도 이곳은 여전히 그리움이다. 유년의 나를 설레게 한 섬. 섬 안의 섬, 황덕도. 여름 어느 날 옆집 숙이가 날 찾았다. 숙이 옆에 교복을 단정히 입은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곱슬머리가 인상적인데다 맑은 얼굴이 밉상은 아니었다. 한창 유행하던 Sㅡ언니를 맺어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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