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섭 시인 1981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죄책감』,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가 있다. 진열장의 내력 / 임경섭 누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아침, 샴푸 통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의 졸음 있는 힘껏 짜낸/ 김 대리는 네모반듯하게 건물 속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인다 날마다 김 대리의 자리는 한 블록씩 깊어진다/ 아래층 이 과장은 한 박스 서류뭉치로 처분되었다지/ 누군가 음료수를 뽑아 마실 때마다 덜컹 내려앉는 일과,/ 버려질 것을 아는 이들도 사방으로 설계된 빌딩 속으로/ 차례대로 몸을 누인다/ 모든 가게의 비밀은 진열장에 숨어 있다/ 이리저리 굴러다녀야 할 것들을..
이원하 시인 1989년 서울 출생. 연희미용고 졸업. 송담대학 컬러리스트과 졸업.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에세이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을 펴냈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나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내 뒤에 놓인 물그릇이 자꾸..
강혜빈 시인 1993년 성남 출생.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의 팔레트』가 있다. 사진가 ‘파란피(paranpee)’로 활동 중이다. 나, 마사코는 생각합니다 / 강혜빈 추운 날에는 추워서/ 더운 날에는 더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아이의 방 안에는/ 큰아이의 옷이 널려 있습니다// 처음부터 네 번째 발가락이 없었는데/ 자꾸만 왼쪽으로 굽어지는 골목// 맏딸은 감나무에서 떨어져도 맏딸입니다// 문지방 위에 앉아 미신을 생각하는/ 발톱을 깎으며 쪼그라드는/ 자매들이 있었는데// 나, 마사코는 대답합니다// 더운 날에는 덥게 태어나서/ 추운 날에는 춥게 태어나서/ 쓸모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큰아이의 ..
주영국 시인 전남 신안 어의도에서 태어났다. 공주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시와 정신》 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했다. 2010년 《시와 사람》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점을 치는 저녁』이 있다. 19회 오월문학상, 2004년 전태일문학상 수상. 광주전남작가회의 사무처장, 죽란시사회 동인. 새점을 치는 저녁 / 주영국 새점을 치던 노인이 돌아간 저녁/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도 새를 불러본다/ 생의 어디에든 발자국을 찍으며/ 기억을 놓고 오기도 해야 하였는데/ 난독의 말줄임표들만 이으며 지내왔다/ 누군가의 경고가 없었다면 짧은/ 문장의 마침표도 찍지 못했을 것이다// 생의 뒤쪽에 무슨 통증이 있었는지/ 진료를 받고 나와 떨리는/ 손에서 노란 알약을 흘리고 간 사내// 산월동 ..
허은실 시인 1975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다수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작가로 활동했고,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는 잠깐 설웁다』와 산문 『내일 쓰는 일기』,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등이 있다. 제8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저녁의 호명 / 허은실 제 식구를 부르는 새들/ 부리가 숲을 들어올린다// 저녁빛 속을 떠도는 허밍/ 다녀왔니/ 뒷목에 와 닿는 숨결/ 돌아보면/ 다시 너는 없고/ 주저앉아 뼈를 추리는 사람처럼/ 나는 획을 모은다//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되는가/ 속으로만 부르는 것들은// 네 이름이 내 심장을 죄어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슬픔이 와 있다// 도요라든가 저어라든가..
이현호 시인 1983년 충남 전의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07년 《현대시》 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가 있다. 제2회 시인동네문학상 수상 배교 / 이현호 혼자 있는 집을, 왜 나는 빈집이라고 부릅니까// 흰 접시의 외식(外食)도 흠집 난 소반 위의 컵라면도 뱃속에 들어서는 같은 눈빛입니다// "죽기 살기로 살았더니 이만큼 살게 됐어요." 혼자 있을 때 켜는 텔레비전은 무엇을 위로합니까/ 이만큼 살아서 죽어버린 것들은// 변기 안쪽이 붉게 물듭니다, 뜨겁던 컵라면의 속내도 벌겋게 젖었습니다// 겨울은 겨울로 살기 위해 빈집으로 온기를 피해 왔지만, 커튼을 젖히자 날벌레같이 달려드는 햇빛들// 사랑..
서대경 시인, 번역가 1976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시와세계》로 등단해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와 옮긴 책으로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등에』, 『창세기 비밀』 등이 있다. 제20회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흡혈귀 / 서대경 흑백의 나무가/ 얼어붙은 길 사이로/ 펄럭인다// 박쥐 같은 기억이 허공을 난다/ 모조리 다 헤맨/ 기억이 박쥐로 태어났다// 나는 이간의 피를 먹지 않는다/ 내가 두 손가락을 입에 대고/ 휘파람을 불면// 박쥐가 내 어깨에/ 내려앉기/ 까지 한다// * 2004년 《시와세계》 등단작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 서대경 공장 지대를 짓누르는 잿빛 대기 아래로 한 사내가 자전거를 타..
김이강 시인 1982년 여수에서 출생. 한양대학 국문과 졸업 동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 200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타이피스트』가 있음. 제2회 혜산 박두진 젊은 시인상 수상.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 김이강 1/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당신은 말한다 조용한 눈을 늘어뜨리며// 당신은 가느다랗고 당신은 비틀려 있다// 그럴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가만히, 당신은 서 있다 딱딱한 주머니 속으로/ 찬손을 깊숙이 묻어둔 채 한동만 오래/ 그 자리에 그래도 서 있을 것이다/ 행인들에게 자꾸만 치일 것이고/ 아마도 누구일지 모르는 한 사람이 되돌아오고/ 따뜻한 커피를 건넸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겨울이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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