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 김잠복
텃밭으로 가는 길목에 집채만 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그 앞을 오가지만, 오늘 아침에 바라본 나무는 달랐다. 회갈색 속살을 오롯이 드러낸 은행나무다. 봄부터 걸쳤던 옷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차가운 바람 앞에 선 것이 마치 속세를 떠나 참선에 든 수행자의 모습니다. 수행자는 봄부터 여름 내내 푸른 법복을 걸치고 지냈다. 삼복더위는 뭇 매미를 불러 모아 경전을 설하고 아래로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쉼터를 내주어 자비를 실천했다. 계절을 지나 선들바람이 찾아들자 ‘수우 수우’ 깊은 명상에 젖어들었다. 자연의 섭리대로 순응하고, 이제는 근원인 뿌리로 돌아갈 때를 알았던지 이파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은 죄다 대지로 돌려주고 마지막 남은 사리 열매까지 내준 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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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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