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가가 생겼다. 툇마루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죽물 상자 속에는 내 잡동사니가 수용되어 있다. 그 체적이 해마다 불어나건만 버릴 수도 고를 수도 없어 이날저날 미루어 오던 터였다. 그 속에는 해마다 세밑이면 날아오는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 거기다 국내외서 이따금 육필로 찾아오는 편지들이 쌓여 있다. 그것들을 한 장이라도 버릴 수 없어서였다. 임시로 그것들을 꾸리어 묶고 꾸러미마다 연도를 표시하는 쪽지를 달았다. 그 상자를 열고 뭉치들을 풀어 놓았다. 한 해의 분량이 자그마치 한 광주리였다. 나는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펼쳤다. 까맣게 잊었던 사람이 내 귓전으로 다가 와서 멍울진 소릴 한다. 나는 실어증에 걸린 양 멍청했다. 그리고 아물거리는 눈까풀이 축축했다. 묵은 카드, 묵은 편지를 ..
모처럼 여가가 생겼다. 툇마루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죽물 상자 속에는 내 잡동사니가 수용되어 있다. 그 체적이 해마다 불어나건만 버릴 수도 고를 수도 없어 이날저날 미루어 오던 터였다. 그 속에는 해마다 세밑이면 날아오는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 거기다 국내외서 이따금 육필로 찾아오는 편지들이 쌓여 있다. 그것들을 한 장이라도 버릴 수 없어서였다. 임시로 그것들을 꾸리어 묶고 꾸러미마다 연도를 표시하는 쪽지를 달았다. 그 상자를 열고 뭉치들을 풀어 놓았다. 한 해의 분량이 자그마치 한 광주리였다. 나는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펼쳤다. 까맣게 잊었던 사람이 내 귓전으로 다가 와서 멍울진 소릴 한다. 나는 실어증에 걸린 양 멍청했다. 그리고 아물거리는 눈까풀이 축축했다. 묵은 카드, 묵은 편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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