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과 원문 강변 물새들의 자취는 사라지고 천상의 옥가루가 선장(仙掌)에 날린다 공중에 어지럽게 흩뿌리다 별안간 바람 따라 날리더니 평지에 가득 쌓여 어느새 한 길 높이가 되었네 몇 말이나 되는 술이 집집마다 가득하고 온갖 데에는 눈꽃이 촌죽(村竹)을 누르고 있구나 옷 전당 잡히고 마신 술의 취흥이 온천지에 횡행하니 백년 인간사가 한 순간이로다 江邊鷗鷺絶影響 강변구로절영향 天上玉屑霏仙掌 천상옥설비선장 空中散亂乍隨風 공중산란사수풍 平地彌漫忽盈丈 평지미만홀영장 十千斗酒盈比屋 십천두주영비옥 滿目瓊花壓村竹 만목경화압촌죽 典衣醉興橫八荒 전의취흥횡팔황 百年人事一瞬息 백년인사일순식 - 성임(成任, 1421~1484),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권, 「한성부 십영 양화답설(漢城府 十詠 楊花踏雪)」 해 ..
번역문과 원문 나는 이 때문에 천하의 일은 시대의 형세가 최상이며, 행불행은 그 다음이고 시비는 최하라고 말한다. 余故曰, 天下之事, 所值之勢為上, 幸不幸次之, 是非為下. 여고왈, 천하지사, 소치지세위상, 행불행차지, 시비위하. - 이익(李瀷,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권20 「사료의 성패를 읽다[讀史料成敗]」 해 설 “천하의 일은 시대의 형세가 최상, 행ㆍ불행(幸不幸)은 그 다음 시비(是非)는 최하”라는 언명은 성호 이익의 역사관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곧 성호는 당대의 형세를 중시하는 역사관을 지녔다는 지적이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을 경우, 성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비에 대해서 가장 그 영향력을 낮게 보고, 그 다음으로 행불행을 살피며, 당대 형세를 가장 앞세운 것이 된..
번역문 우리 백부와 곡운계곡으로 말하면 전후 십수 년 동안 일상의 기거에서 앉든 거닐든 구곡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첩첩 산곡과 울창한 초목이 모두 당신의 폐부며 모발이요, 안개와 구름이 모두 당신의 들숨이며 날숨이요, 물고기와 새와 고라니와 사슴이 모두 당신의 벗이니 무엇을 찾은들 얻지 못하겠는가. 그럼에도 종소문과 같은 화가를 빌어 그림을 그린 것은 어째서인가? 실로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발문을 쓴 뒤 선생이 읽어 보시고는, “네 말이 좋구나. 그러나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말이야. 내 이 두 다리가 때때로 산을 나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 구곡을 늘 눈길 속에 담아두지 못하잖아. 그럴 때에 이걸 보려는 게지.” 하셨다. 아,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좋아함이 독실하고 즐거움이 깊다고 하지 않으면 참..
번역문과 원문 흙덩이 뭉쳐 떡 만들어 소꿉 노는 아이들 앞 다투어 몰려다니며 머리채를 잡아 뜯네 벼슬판 난장 다툼 이와 다를 게 무에랴 명줄 닳고 몸 망쳐도 알지를 못하누나 團土作糕戱小兒 단토작고희소아 爭來爭去髮相持 쟁래쟁거발상지 宦塗傾奪曾何異 환도경탈증하이 捨命捐身不自知 사명연신부자지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순암집(順菴集)』 권1 「감회가 있어[有感]」 제1수 해 설 권력은 무엇이며 권력은 왜 가지는가.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그 유명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을 제창한 바 있다. 곧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개인의 만족스러운 생활과 자기 존재의 보존을 추구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고, 개별 인간 ..
번역문과 원문 넘어가지 않던 밥도 마주 앉아 먹으니 한 술 더 먹게 되고, 밍밍하던 시골 막걸리도 마실수록 맛나다. 少食輒防喉 對案飯加匕 村醪薄無過 屢觴覺轉美 소식첩방후 대안반가비 촌료박무과 누상각전미 - 이민구(李敏求, 1589〜1670), 『동주집(東州集)』4권 「희신랑래회(喜申郞來會)」 해 설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洲) 또는 관해도인(觀海道人)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수광(李睟光)의 아들이다. 진사시와 증광문과(增廣文科)에서 모두 장원한 실력자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뒤 36세의 나이로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영예를 누렸지만,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자 문책받아 평안북도 영변에 유배되었다. 영변에서 7년, 아산에서 3년의 유..
번역문 봉양할 때 그분들의 기거와 음식을 살펴보면 금년이 작년만 못하고 오늘이 어제만 못하기에 쉽게 흘러가는 세월을 탄식하고 붙잡기 어려운 만년을 애석해했을 것이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극한 정에서 우러나와 절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물러나 자신의 당에 ‘희구’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니, 항상 눈길을 두면서 한 달에 30일, 하루에 24시간 동안 한 생각도 기쁨이 아님이 없고 한 생각도 두려움이 아님이 없고자 했을 것입니다. 정성과 효가 지극하지 않다면 누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성인인 공자와 현인인 맹자·주자의 경우에는 효가 지극하지 않은 게 아니고 정성이 감응하기 어려운 게 아닌데 끝내 하늘에서 얻지 못한 건 이치의 변칙적인 것입니다. 그대의 부친은 자신을..
번역문과 원문 일어나기는 쉽지만 제어하기는 어렵기로 분노만 한 게 없다. 易發難制, 莫忿懥若. 이발난제, 막분치약. - 이현일(李玄逸, 1627~1704), 『갈암집(葛庵集)』권22 「징분잠(懲忿箴)」 해 설 추석 연휴의 어느 날, 학습지를 풀던 큰딸이 갑자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연휴라서 엄마도 아빠도, 학습지 선생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쉬는 것 같은 그런 때에 왜 자기만 연휴 내내 이 학습지를 매일 꼬박꼬박 풀어야 하냐며... 그러더니 결국에는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습니다. 분통 터뜨리는 거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엉엉 우는 꼴까지는 두고 볼 수 없어, 이번엔 부녀지간의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학습지 푸는 아이와 부모 간에 수없이 오갔던 그 말, “너..
번 역 문 아, 흥하고 망하는 것은 운수이고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은 행운이 작용한다. 어찌 사람만 그렇겠는가. 산천과 누정이라도 역시 그렇다. 예전의 황폐한 구릉과 끊긴 언덕이 지금 화려한 건물로 변하여 빼어난 사람들과 글 짓는 이들이 머무는 곳이 되었으니, 운수가 그 사이에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누정이 나를 통해 이름을 얻은 것은 만났다고 할 수 없고 나의 시가 또 정채를 발휘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이 누정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영원토록 남을 것이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행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조악한 시가 부질없이 장독을 덮을 만하다 한들 또 무슨 문제이겠는가. 원 문 噫, 興廢, 數也, 遇不遇, 幸也. 豈獨人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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