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대 / 김사랑
뽀득뽀득 눈을 밟고 온 택배 상자를 열었다. 마른 대추 한 봉지와 함께 잘게 잘린 나뭇가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마른 고춧대다. 언니가 보낸 선물이다. 쓸모없는 고춧대를 왜 보냈을까. 궁금증 해결은 잠시 미뤄두고 무엇보다 고춧대를 보니 언니 오빠들과 다정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꼭 휴일에 고추를 심었다. 호락질하시던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 날이면 한가하던 들판이 모처럼 분주해졌다. 도랑물 퍼 담는 소리, 종달새처럼 종종대는 발자국 소리, 숲속 바람까지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내려왔다. 밭이랑은 반짝이는 땀방울로 푸르게 메워졌고, 시들시들 눕던 고추 모종도 단물 한 모금에 화답하듯 화들짝 일어섰다. 고추를 다 심고 나면 오빠가 대장이 되어 작은 둠벙으로 먼저 들어갔다. 줄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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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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