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그 너머 / 최장순
볕 좋은 이런 날은 평소 즐기지 않던 원두커피 한 잔마저 향기롭다. 창가에 앉아 우두커니 음미하는 가을 냄새가 짙다. 창 너머로 머지않아 다가올 겨울이 하얗게 겹친다. 문득 찻잔 속 찰랑거리는 내 얼굴에도 표정이 겹친다.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낯익다. 평온해 보이는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등은 고요한 듯 시끄러워 보였다. 찌를 지켜보고 있을 눈빛이 불쑥 돌아볼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등은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5·16을 맞으며 군청의 주사 직함을 놓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것이다. 국졸(國卒) 학력은 새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가장의 몫은 어머니에게로 넘겨졌고, 아버지는 오래도록 안타까운 세월만 낚고 있었다. 절망과 분노와 회한이 뒤섞인 낚싯밥을 덥석 물어줄 물고기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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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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