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에 서는 나무 / 김정화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창문 밖에는 낯선 은세계의 성지가 펼쳐져 있다. 순백색 융단이 지붕 위를 다붓이 덮었고, 목화송이 같은 눈꽃은 겨울나무에 매달렸다. 침엽수 위에 옷자락을 드리우고 신선처럼 길게 누운 모습이 여느 때 보다 초연하다. 아침 햇살 대신 눈이 기별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방문에 흠칫 가슴이 싸해진다. 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서 가만히 눈 겨루기를 해본다. 넝쿨진 등나무 사이로 햇솜 같이 나부끼는 신비스런 눈발에 잠시 눈 멀미가 인다. 순결한 성자의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나무의 모습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 떨어지는 눈발이 켜켜이 나붓대어도 나무는 잔가지 하나 흔들림 없이 눈발을 맞이한다. 동(動)과 정(靜)의 엄숙한 만남에 마음이 찡해진다. 문득 십 년 전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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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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