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 문혜란
사제 서품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맨바닥에 몸을 대고 납작하게 엎드린 사제의 등을 보고 있으니 목덜미에 가래톳이 돋았다. 마주 포갠 손등에 이마를 대고 다리를 곧게 뻗은 모습이 더는 낮아질 수 없는 자세였다. 짧은 순간이 심어 준 긴 여운은 등을 향한 신뢰와 연민으로 깊게 남았다. 정면에서는 빤히 쳐다보지 못하는 소심함에서 비롯된 버릇이기는 하나 나는 타인의 등을 즐겨 바라본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행인의 등에 자주 눈길이 머문다. 어깨를 곧게 펴고 경쾌하게 걷는 젊은이의 등에는 자신감이 넘쳐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손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의 휘어진 등 위로 내리쬐는 칠월의 햇볕이 야속한 날도 있다. 수굿한 등에서는 생각의 깊이를, 쓸쓸한 등에서는 그리움의 깊이를 점쳐 본다. 나부의 그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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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2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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