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먼 불빛 / 송복련
며칠 전에 만난 등잔이 생각나서 초에 불을 댕긴다. 불꽃이 핀다. 어둠에 둘러싸여 작게 너울거리는 몸짓에, 물건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벽과 천정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밤의 숨소리인가. 풀숲이 뒤척이는가 싶더니 벌레 울음이 귀에 파고든다. 간간이 바람을 가르며 멀리 사라지는 자동차 바퀴 소리. 동그랗게 어둠을 밀어내던 오래전의 밤이 떠오른다. 등잔은 젊은 날의 어머니가 떠오르는 그리운 불빛이다. 등잔에 바투 앉은 어머니의 그림자가 벽에 거인처럼 앉았다. 옷들과 반짇고리며 윗목의 요강들도 저마다 그림자를 거느렸다. 초저녁이면 우리들은 두 손으로 말과 새를 벽에 만들며 ‘다그닥 다그닥’ 발굽소리를 내거나 날갯짓하며 그림자놀이를 했다. 막냇동생을 재우고 나면 손끝에 바늘을 쥐고 헤진 양말이나 베갯잇을 깁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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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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