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가능성 / 이성미
나도 사물에 관해 쓰려고 했다. 사물을 하나씩 불러보고 있었는데, 내 눈앞에 여자의 맨발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혼자 우기고 있었다. 맨발도 사물이라고요! 그 점을 설득하겠어요! 집에 오면 양말을 벗고 맨발이 된다. 내가 사물이라고 우기는 맨발은 이 맨발이 아니다. 집 안에 있는 태평스러운 맨발이 아니라, 외출복처럼 구두 안에 들어가 있는 당당한 맨발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내가 처음 맨발에 구두를 신고 외출한 날은 스물두 살의 여름이었다. 스타킹을 신었을 때와 달리 구두는 맨발을 찰싹 감쌌다. 발이 점점 끈적끈적해졌다. 샌들이 아닌 구두 속에서 맨발은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왜 좋았을까. 하나를 뺐다는 게 좋았다. 격식이 헐거워지고 살짝 흠집이 난 느낌도 좋았다. 그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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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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