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인형의 집 / 한경선
긴 담장을 따라 자잘한 바람결이 흐른다. 불그레한 황톳빛으로 물든 골목, 흙이 돌을 품고 돌은 흙을 고이며 시간의 소매 끝을 붙잡고 있다. 골목 첫들머리에 대문 없는 집이 보인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을 기웃대다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덩실한 기와집이 인기척에도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해와 달도 지나쳐 버린 기둥과 마루는 검고 꺼칠하다. 그 옛날에는 댓돌이며 문살 어느 한구석 윤나지 않은 데가 있었으랴. 숨은 쉬지 않지만 정성 들여 지은 흔적이 보이는 집이다. 한때 열두대문 집이었다는 말이 구멍난 문짝 사이를 들락거리는데 하늘을 향해 살짝 들린 처마 끝에서 맑은 하늘이 파르르 떤다. 넓은 터에 열두 채 건물은 자취 없고 너덧 채만 듬성듬성 남아있다. 지체 높고 호방한 주인이 손님과 세상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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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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