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났는데도 봄은 아직 멀리 있다. 우리 아파트에 난실은 별도로 없어도 따뜻한 실내가 겨우내 산실 역할을 해주어서인지 춘란이며 풍란, 춘백 그리고 내 키만큼이나 자라 잘생긴 연산홍이 환희의 폭개를 하여 온 집안에 꽃향기가 분분하다. 연산홍은 실내를 붉게 물들이고 이제사 가쁜 숨결을 고르는 듯 든든하고 화려한 자태까지 돋보인다. 진분홍과 조화를 잘 이루는 온시디움은 우선 꽃모양이 특이하여 눈길을 끈다. 노란 물이 묻어날 듯 곱디고운 색에 한 장으로 된 꽃입술 위로 꽃의 설판은 진한 와인빛을 띠었고 작은 꽃잎 두 장이 벌의 형상을 한채 붙어있다. 잎이 두껍고 넓은 호접란은 꽃이 대접 모양을 한채 큼직하여서 제일 먼저 눈에 든다. 향은 없어도 꽃잎이 핑크빛을 띠어 사랑을 느끼게 하는데 뉘를 그리 기다리나..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 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 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뇌가 명석하다. 값싼 센티멘탈리즘에 흐르지 않는, 지적인양 뽐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 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 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냈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애에..
소리로 듣기 베란다 창문을 열자 상큼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오월이다. 비 온 후라 모처럼 쪽빛 얼굴 내민 하늘과 앞산 싱그러운 숲이 상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간밤에 깊은 잠을 못 이뤄 무지근한 기분을 가볍게 날려 보내는 듯 청량하다. 오늘은 꼭 만나리라. 일 년에 너더댓 번 만나 식사를 함께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속 깊은 지인을. 지난 모임에 못 나와 궁금했던 그녀를 만날 심사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의 메시지가 이미 떠 있었다. 이심전심인가 하여 반가웠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5호실. 고 OOO" 눈을 의심하며 보고 또 확인했다. 오늘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녀의 남편 별세를 알리는 부고였다. 이럴 수가. 돌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일었다. 다리가 풀리며 심장..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었다. 난을 그만두고 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난과 돌을 다 좋아하게 되었다. 난은 난대로 좋고 돌은 돌대로 좋아서 각각 좋아하게 된 것이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극히 자연스러운 일, 으레 그래야 할 일,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물론 꼭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법은 없겠지만 난을 좋아하다가 돌까지를, 그리고 그 난과 돌을 다 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로서는 다시없는 청복(淸福), 다시없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난을 난대로만, 돌을 돌대로만 아는 것으로 그쳤다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을 알았기 때문에 돌을 더 알 것 같고 돌을 앎으로써 난을 더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다...
1974년부터 수필이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썼으니, 수필과 인연을 맺은 지도 28년이 되었다. 한 분야에 30년 가까이 몸을 담아 왔다면 한눈 팔지 않은 인생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내가 줄곧 일해 온 곳은 잡지사 아니면 신문사였다. 그 시절의 내 희망은 거창하게도 명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살맛 나게 한 것은 유명한 분들을 매일같이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었다. 철기 이범석 장군을 비롯하여 외솔 최현배 선생, 청전 이상범 화백과 홍익대학의 이마동 학장, 또《현대문학》의 조연현 주간을 비롯하여 아동문학가 이원수·시인 김용호 선생과 같은 문단의 중진 인사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부지런히..
어느날, 나는 한 벌목꾼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60년대만 해도 지리산 기슭엔 울창한 삼림이 우거져 있었다. 장작을 땔감으로 하는 때이어서 벌목을 하는 데가 많았고 숯을 굽는 곳도 있었다. 첩첩산중으로 내왕하는 차는 장작과 숯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있었을 뿐, 버스의 운행도 드물었다. 벌목하는 장면만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름드리 큰 참나무·소나무들이 늘어 서 있는 산림 속에서 몇백 년 자란 거목이 쓰러지는 광경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장엄의 극치라 해야 좋을 것이다. 산중에서 벌목 일을 많이 해온 사람들은 나무의 깊이를 안다. 나무의 생각과 연륜과 향기를 알게 된다. 그들이 톱을 갖다 대는 순간 나무의 뿌리와 높이가 마음으로 전해 오는 것이다. 오랜 연륜을 가진 나무일수록 생각이 깊..
한껏 무르익은 여름은 강렬한 햇살을 앞세워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분주했던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려고 혼자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크! 이건 뙤약볕이다. 이마에 손을 대어 햇빛을 가리며 앞 건물에 있는 감자탕집으로 들어갔다. 전날의 숙취도 있어 '감자 해장국'을 시켰다. 시원한 냉수를 한 모금 들이킨 후, 식당을 휘둘러보았다. 아는 직원이라도 있나 살펴보니 모르는 얼굴들뿐이다. 무심코 바라본 앞자리에는 중년의 갈색 머리 여인이 식탁 가득히 뼈다귀를 쌓아가며, 감자 섞인 해장국을 먹고 있다. 고개를 젖혀가면서 붉은 혀로 뼈에 붙은 익은 살점을 익숙히 발라먹는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정면으로 마주 앉은 자리라 먹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민망하여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신문..
석 달 넘게 입원 중인 동생의 시부(媤父)를 뵙고 왔다. 이분은 수 년 동안 동맥경화증으로 고생을 하다가 뇌혈관이 터져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그곳에서 다시 병실로 옮겨 치료하기 석 달이 넘는다. 사장(査丈)어른인지라 동생의 낯을 봐서도 진작 문병을 했어야 옳건만, 그댁 가족들의 만류로 오늘에 이르렀다. 환자가 의식 불명인데다가 그 모습이 남에게 보이기 민망하다는 것이다. 몸에 줄줄이 고무호스를 대고 있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쉬지 않고 흐르는 뒤 때문이었다. 사람에 따라 몸에 있는 오물을 다 쏟아내고야 운명을 한다는 말을 들은 바도 있어 더 늦기 전에 병 문안을 하기로 작정했다. 비록 환자가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내 할 도리는 하고 싶었다. 병실엔 자손들은 없고 간병하는 아주머니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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