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한쪽에 일면식도 없는 두 사나이가 마주 섰다. 거리를 질주하면서 땀 흘리고 고통을 받아들일 각오가 서린 표정이다. 지역적으로 북쪽인 강원도와 남쪽 제주를 대표한다. 마라톤이라는 매개체가 L과의 만남을 이어 줬다. 그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제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공직에 있으면서 앞만 보며 달렸다. 오십 고개를 넘고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래서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시작한 운동이 마라톤이었다. 나이는 나 보다 두 살 위다. 2003년, 한참 마라톤이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는 시기였다. L은 강원도청 마라톤 동호회 ‘강마회’ 회장을 맡아 조직 활성화에 정성을 쏟고 있다. 나 또한 제주도청 마라톤 동호회 ‘도르미’를 그해 창단하여 삼 년간 회원 확보와 운영..
* 삼사십 대로 보이는 남성 10여 명이 한 카페에 모였다. 그곳은 그들이 울기 좋은 곳이다. 그 시간 카페 입구엔 일반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팻말이 걸린다. 그들 앞에는 손수건이나 일회용 휴지가 놓여있다.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영화를 보면서 거리낌 없이 운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훌쩍거리거나 소리 내서 울기도 한다. 평범한 영화동호회원처럼 보이는 이들은 한국판 ‘루이카쓰(淚活)’ 모임 회원들이라 한다. ‘루이카쓰’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함께 모여 우는 일’을 일컫는다 한다. 일간지에서 읽은 내용이다. 옛 어른들은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눈물은 나약함의 증거이며 남자는 강인해야 한다는 게 정석이었다. 젠더(gender)의 관점으로 보자면 남성..
이른 아침, 등산을 가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부지런한 관리실 아저씨가 벌써부터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버리는 통 위에 못 보던 꽃바구니 하나가 버려져 있다. 내용물 대신, 누군가가 골판지를 찢어 까만 매직 펜으로 글씨를 써 놓았다. “야! 이놈아, 너도 참 불쌍하구나. 너는 커다란 기쁨을 주었는데 그들은 너를 야밤에 개차반처럼 버렸구나!”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재활용 용품이 아닌데도 쓰레기봉투에 넣지 않고 그냥 몰래 버렸던 모양이다. 마음이 상한 경비 아저씨가 무언의 항의로 위트와 유머가 섞인 글을 일부러 적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버려진 꽃바구니와 글씨가 쓰여진 골판지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아리다. 그동안 잠시 잊었다..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섶섬이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서자, 암벽 위에 작은 돌집이 보였다. 벼랑 위 깔깔한 소금기를 벗 삼아 삶의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는 삭정이 같은 무릎을 보듬고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바람 한 점만 불어도 거친 말 한마디만 내 던져도, 금세 기울 것 같은 수평을 아버지는 꼭 붙들고 있었다. 숭숭 구멍 뚫린 관절에 햇볕을 끌어모으고 먼바다를 내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잊었다는 것인지 다 지나간 일이라 모른다는 것인지 그 고갯짓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단물 쓴물 다 빠진 아버지의 빈 가슴에 찾아 든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의 마음도 마른 웅덩이처럼 젖어들었다. 말랑하게 가라앉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가 평생 쌓아 놓은 돌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
옛 담은 풍경을 안고 풍경은 옛 담을 안는다. 운곡서원 담장 위에 팔랑팔랑 내려앉는 은행잎은 노랑나비 군무 같다. 저렇게 많은 나비들의 춤사위라니. 기왓장 위의 이끼는 세월을 덧입었다. 은행나무가 담장을 넘보듯 나도 안쪽을 바라본다. 넓은 마당에 연이은 강당에선 앳된 도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가을은 운곡서원에서 더 깊어진다. 담장이라면 대릉원 담장을 빼놓을 수 없다. 봉긋이 솟은 여인의 가슴을 닮은 곡선의 우아함은 보면 볼수록 푸근하다. 덕수궁 돌담이 살아있는 궁궐을 안고 있다면 대릉원 돌담은 사후 세계를 껴안고 있어 서로 대비된다. 대릉원 돌담길은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에 가장 아름답고 덕수궁 돌담길은 은행나무 단풍이 고운 가을을 최고로 친다. 이렇듯 담은 주변풍경과 어울려 계절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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