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과 원문 모든 생물의 생장은 다 때가 있다. 앞서 빨리 된다고 어찌 기뻐하며 뒤져 더디 된들 어찌 원망하랴. 凡物早晩 各有其時 其先而速也奚喜焉 其後而遲也奚怨焉 범물조만 각유기시 기선이속야해희언 기후이지야해원언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송정집(松亭集)』3권 「초당삼경설(草堂三逕說)」 해 설 하수일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영산 현감(靈山縣監), 호조 정랑(戶曹正郎) 등을 역임하였지만 크게 현달하지는 못하였다. 문장은 의리(義理)에 근거하여 전아(典雅)하고 조리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용문의 출처는 「초당삼경설」이다. 음력 2월에 초당을 지은 하수일은 국화와 해바라기를 심었다. 상추는 그보다 늦은 3월 초에 심었는데, 채 20..
번역문과 원문 푸른 등라 우거진 곳 밤은 깊었는데 한번 누워 보니 홀가분하여 온갖 생각 사라지네 멀리 산굴에 구름 피어나 다시 달을 가리고 작은 시내에 조수 가득 차 다리가 잠기려 하네 몸에는 벼슬이 없으니 가난해도 오히려 즐겁고 흉중에는 시서(詩書)가 있으니 비천해도 또 교만하다 서글퍼라 새벽이 찾아온 우물에는 벽오동에 서린 가을 기운이 또 쓸쓸하겠지 綠蘿深處夜迢迢 녹라심처야초초 一枕翛然萬慮銷 일침소연만려소 遠岫雲生還掩月 원수운생환엄월 小溪潮滿欲沈橋 소계조만욕침교 身無簪組貧猶樂 신무잠조빈유락 腹有詩書賤亦驕 복유시서천역교 怊悵曉來金井畔 초창효래금정반 碧梧秋氣又蕭蕭 벽오추기우소소 - 성여학(成汝學, 1557~?), 『학천집(鶴泉集)』 2권, 「권귀(權貴)를 비웃다 - 당시 이이첨이 공의 시를 보고자 하였는..
번역문과 원문 우리 선비들에게 가장 절실한 공부는 오직 하학下學입니다. … 이는 입으로 말해줄 수 없고 모두 실제로 힘써 공부하여 그 진위를 체험해야 합니다. 吾儒着緊用工, 專在下學. … 此不可以口傳, 都在着實用力, 以驗其眞僞. 오유착긴용공, 전재하학. … 차불가이구전, 도재착실용력, 이험기진위. - 안정복(安鼎福, 1712~1791), 『순암집(順菴集)』권8 「황이수에게 답하다[答黃耳叟書]」 해 설 순암(順菴) 안정복이 72세 되던 해(1783년), 자신에게 간절히 공부의 방법을 묻는 제자 황이수(黃耳叟)에게 보낸 답장에서 한 말이다. 황이수는 황덕길(黃德吉, 1750~1827)이다. 그는 형인 황덕일(黃德壹)과 같이 안정복에게 배웠고,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순암의 정갈한 순암연보를 작성하기도..
번역문과 원문 비유하자면 물건이 눈앞에서 멀어 가면 차츰 작아지고 가까우면 차츰 커지는데, 작으면 살피기 어렵고 크면 보기 쉬운 것과 같이 환난(患難)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比如物之在眼 漸遠則漸小 漸近則漸大 小則難察 大則易見 患難亦同 비여물지재안 점원즉점소 점근즉점대 소즉난찰 대즉이견 환난역동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26 「경사문(經史門)」 해 설 훗날의 어려움을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급박한 일이 닥치고 나서야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는 경우가 잦다. 어쩌면 훗날의 어려움을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노력이 정말 미래를 대비할 ..
상(箱)은 필시 죽음에게 진 것은 아니리라. 상은 제 육체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라도 손수 길러서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상은 오늘과 같은 환경과 종족과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상의 시에는 언제든지 피가 임리(淋漓)한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破船)에서 떨어져 표랑(漂浪)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船體) 조각이었다. 다방 N, 등의자(藤椅子)에 기대앉아 흐릿한 담배 연기 저편에 반나마 취해서 몽롱한 상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 비극'을 느끼고 소름 쳤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켜 있었..
번 역 문 Ⅰ. 경상우도 병마우후(兵馬虞候) 이용순(李容純)이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렸다. “이달(1월) 24일 자시[子時 밤 11시~1시]에 병마절도사(병사로 약칭)가 거처하는 동헌(東軒)에 불이 나서 병사 이인달(李仁達)이 불길 속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병사가 차는 밀부(密符)와 병부(兵符)는 옆방에 있던 통인(通引) 김쌍윤(金雙胤)이 챙겨서 갖고 나와 본영의 대솔군관(帶率軍官) 이현모(李顯謨)가 와서 전하므로 잘 받았고, 밀부는 군관 유현(柳眴)에게 주어서 올려보냈습니다. 병사가 사용하던 인신[印信 관인(官印)]과 3개 진(鎭) 영장(營將)의 병부(兵符) 왼짝[左隻]과 소속 31개 고을 병부의 왼짝은 남강(南江)에서 건졌고, 옛날에 쓰던 인신, 유서(諭書), 절월(節鉞), 각 창고의 열쇠는 모두 불에..
번역문 과 원문 농가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들 갈 사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겠나. 자식을 만나서 기뻐 취하고 묘시가 넘도록 달게 잤더니 냇물 불어 개구리밥 보에까지 붙고 바람 불어 꽃잎은 주렴을 치는구나. 내 시가 아직 안 되었다 자꾸만 타고 갈 말 챙기지 말렴. 不有田家雨 불유전가우 行人得久淹 행인득구엄 喜逢子孫醉 희봉자손취 睡過卯時甘 수과묘시감 川漾萍棲埭 천양평서태 風廻花撲簾 풍회화박렴 吾詩殊未就 오시수미취 莫謾整歸驂 막만정귀참 - 김시보(金時保, 1658~1734), 『모주집(茅洲集)』 권8 「빗속에 큰딸아이 가는 걸 만류하며[雨中挽長女行(우중만장녀행)]」 해 설 이 시는 모주(茅洲) 김시보(金時保, 1658~1734)의 작품입니다. 김시보는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사경(士敬)이며 호는 모주..
번 역 문 현판마다 꼭꼭 “정가로 판매합니다.”, “물건 좋고 값은 쌉니다.”, “단골고객을 속이지 않습니다.”, “어린애도 영감도 속을 일 없습니다.”라는 따위 말을 써서 전포 밖에 세워놓았다. 현판을 세우지 못한 집은 하다못해 판자 위에라도 써서 처마 끝에 매달았다가 밤이면 거두어들인다. 또 널판지 위에 파는 물건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전포 앞에 걸어둔 곳도 있다. 대개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편한 것은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그리기에 불편한 것은 글자로 쓴 것이다. 담뱃대, 부채, 가죽장화 등속은 별도로 엄청 큰 모조품을 만들어 건물 밖에 걸어두었다. 행상들이 지나가자 나귀가 대열을 이루고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혀 온 길에 가득하고 들녘을 가릴 판이었다. 곡식을 담는 포대는 모두 면으로 만든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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