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역 문 군사를 일으킬 때 특별히 호칭을 만들어 스스로 기이함을 드러내는 이들은 결국 대부분 일을 성취하지 못한다. 송의(宋義)는 경자관군(卿子冠軍)이라 칭했는데 패배하였고, 적의(翟義)는 주천대장군(柱天大將軍)이라 칭했는데 패배하였고, 유연(劉演)은 주천도부(柱天都部)라 칭했는데 패배하였으며, 전융(田戎)은 소지대장군(掃地大將軍)이라 칭했는데 패배하였다. 이는 대개 국량은 작은데 스스로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어 쉽게 자만하여 패배한 것이다. 이주영(爾朱榮)이 천주대장군(天柱大將軍)이라 칭한 일, 후경(侯景)이 우주대장군(宇宙大將軍)이라 칭한 일, 황소(黃巢)가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라 칭한 일 등, 자질구레한 사례가 무척 많지만 또한 말할 거리도 못된다. 원 문 起事之始, 別立號稱, 以自表異者, 卒..
번 역 문 의주 변경 멀고 아득하니/ 나라의 서쪽 국경이라 백성들 채무로 곤궁하여/ 물에 빠진 듯 불에 타는 듯하였도다 공이 그 장부 불태워/ 재물 버리고 사람 구하니 우리 백성 재앙의 구덩이에서 건져내고/ 우리 백성 이익의 근원 넓혀주었도다 옛날에는 구렁텅이에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전원에서 편하게 지내니 들에는 뽕과 삼이 있고/ 울짱에는 닭과 돼지 있도다 이에 배불리 먹고 노래하며/ 자식을 먹이고 손자와 장난치니 어찌 공의 덕이라 하랴/ 어지신 성군 덕이로다 灣塞遙遙 만새요요/ 國之西門 국지서문 民困于貨 민곤우화/ 如墊如焚 여점여분 公火其籍 공화기적/ 以財易人 이재역인 脫我禍穽 탈아화정/ 弘我利源 홍아리원 昔阽溝壑 석점구학/ 今安田園 금안전원 野有桑麻 야유상마/ 柵有鷄豚 책유계돈 載飽載歌 재포재가/..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자존심은 일상적인 의미로 말하는 자존심, 예컨대 "내가 이런 지위인데 어디에 가서 이런 대접을 못 받았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다"라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그래서 어디서 낮게 평가를 받든 이른바 자존심이 상하지 않거든요. 자존심을 다루는 철학을 자기를 배려하는 미학적 윤리학 곧 존재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존재미학이라는 것은 원래대로 번역하면 실존미학이라고 해야 됩니다. 철학에서는 '존재'와 '실존'을 구별하는데 존재는 그냥 있는 상태고, 실존은 어떤 것이 자기 규정에 맞게 참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또 생물학적 종으로 있는 것은 존재에 지나지 않고, 인간이 정말 인..

번 역 문 음식ㆍ의복ㆍ수레ㆍ거처는 하(下)로 하고, 덕행ㆍ언어ㆍ문학ㆍ정치는 상(上)으로 하라. 飮食衣服輿馬居處 下比 德行言語文學政事 上比 음식의복여마거처 하비 덕행언어문학정사 상비 -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청성잡기(靑城雜記)』2권 「질언(質言)」 해 설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엮은 『청성잡기』에는 우리가 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많이 실려 있다. 특히 「질언(質言)」에 실린 1~3행의 짧은 격언들은 건강하고 견고한 삶에 대한 매우 실용적인 지침이 되어준다.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고 갈팡질팡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선명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우리고전에서 찾은 이러한 삶의 철학과 지침은 오늘날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일..

번 역 문 한 방에서 불길이 일어났는데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자식은 살아남았습니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겠으나 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스스로 생각건대, 죽기 전의 책무는 오직 선친의 유고(遺稿)를 정리하고 선친의 사적(事跡)을 손수 구비한 다음 입언군자(立言君子)의 글을 얻어 후세에 영원히 인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창자가 썩고 끊어지면서 인리(人理)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 일을 마치지 못한 것이 또 천고의 한이 될까 몹시 걱정입니다. 만약 어르신처럼 선친과 동시대를 살면서 친분을 나눈 분이 시나 글을 지어 은혜롭게 한마디 말로 지하에 계시는 선친을 빛내주신다면, 알려지지 않은 선친의 덕이 드러나고 훗날에도 징험..

번역문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면서 빈둥거리는 내가 답답하였던지 처가 형제들에게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나에게 자리라도 짜라고 성화를 대는 한편 이웃 늙은이에게 자리 짜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하였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누르고 해보니, 처음에는 손에 설고 마음에 붙지 않아 몹시 어렵고 더딘 탓에 하루종일 한 치를 짰다. 이윽고 날이 오래되어 조금 익숙해지자 손놀림이 절로 빨라졌다. 짜는 법이 마음에 완전히 무르녹자 종종 옆 사람과 말을 걸면서도 씨줄과 날줄을 짜는 것이 모두 순서대로 척척 맞았다. 이에 고단함을 잊고 일에 빠져 식사와 용변 및 접객할 때가 아니면 놓지 않았다. 헤아려보건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는 됨직하니, 잘 짜는 사람에 견주면 여전히 무딘 편이지만 나로서는 크게 나아진 셈..
번 역 문 산에 올라가 옥을 캔 뒤에야 범을 만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바다에 들어가 진주를 캐낸 후에야 물속의 위험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괴물이 작은 못에서 고통당할 때 기린과 봉황이 어찌 하늘 못의 용보다 어질지 못했겠는가? 그들이 이 괴물에게 어질지 못했던 것은 작은 못에 사는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고 또 구해 줄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저 하늘 못의 용 또한 어찌 기린과 봉황보다 어질었겠는가? 그가 괴물을 도와준 것은 분명 하늘 못의 용도 작은 못에서부터 자라 그 재주를 이루었기에 괴물의 고통을 잘 알았던 것이다. 괴물의 고통을 잘 알고 도와줄 방법이 있었는데도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하늘의 처벌을 못 면했을 것이다. 신기하구나! 이 괴물이 기린과 봉황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괴물이 비..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夫語眞語肖之際 假與異在其中矣 부어진어초지제 가여이재기중의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연암집(燕巖集)』권7 별집(別集)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해 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기 쉽다.’ 영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이다. 나는 박지원의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박지원은 「녹천관집서」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글 짓는 법’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더 나아가 ‘우리의 삶’ 혹은 ‘나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박지원은 이 글에서 옛글을 모방하여 글 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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