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표정 / 배종팔
스산한 가을날 오후, 짙은 가을빛에 이끌려 비탈진 돌계단을 오른다. 아내와 보름 만에 나선 산행길이다. 돌계단 양옆 단풍나무 잎사귀에 가을 햇살이 뛰논다. 산의 형상이 물고기라면 눈의 자리에 암자가 있다. 암자를 지나 몇 발짝 오르면 화강암으로 된 돌부처가 토굴 속에 광배를 끼고 앉아 있다. 가슴 한켠에 불심이 자리한 건 아닌데도 그의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에 매번 발목이 잡혀 아내와 나란히 서서 합장하며 숨을 고른다. 오늘도 두려움 반, 경건함 반으로 그를 쳐다본다. 삶의 행적을 훤히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가 서늘하여 매번 그의 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이제 무뎌질 만도 한데 표정이 깊고 무거워 도무지 심중을 헤아릴 수 없다. 보름 전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손톱달처럼 눈을 내려뜨고 나를 꾸짖는 듯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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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1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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