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의 이름처럼 / 김숙
“네 이름은 물가 숙이야.”라고 아버지가 일러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까? 한글을 웬만큼 뗐고 낮은 자릿수의 곱셈과 나눗셈을 터득할 즈음이었다. 새로운 난이도의 학습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네모 칸 공책에 쇠 金, 물가 淑을 천천히 적으며 본을 보였다. 삐침과 파임, 가로획과 세로획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무엇인가 질문하고 싶었지만, 절대적일 만큼 엄하던 시절이라 그러지 못했다. 평생 분신처럼 사용할 이름이니 잘 새기라는 당부 같았고 나름 아버지의 뜻한 바가 담겼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새로 받은 화두처럼 뇌이며 쓰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서도 외우고 눈을 감고도 말했다. “물가 숙, 물가 숙, 물가 숙….” 중학생이 될 때까지 내 이름의 의미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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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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