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날 파리만 보았다 / 남호탁
부검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부검은 원장 몫이었지만 원장이 자리를 비운 탓에 외과의사인 내가 사체의 배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준 종합병원에서 외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검실은 병원 지하 영안실 옆에 붙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왜소한 사체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잔뜩 비틀린 마른장작 같은. 말이 부검실이지 비좁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혼자 사는 할머닌데, 괴한에게 봉변을 당한 듯합니다. 딱히 다른 상처는 없고 두개골만 깨진 걸로 보아 넘어지면서 생긴 뇌출혈이 사망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검은색 정장의 젊은 검사가 부검에 앞서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그 옆에는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점퍼 차림의 형사가 수첩을 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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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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