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의 숨결 / 이정자
해맑은 날씨에 눈이 부시다. 봄물이 번져가는 벚나무 둥지에 꽃망울이 브로치처럼 앙증맞다. 간절기 이불을 빨래하고 의류 건조기 안에 넣으려다 꺼낸다. 이불을 베란다 창틀에 툭 걸쳐놓고 하늘을 바라보니 나비 구름이 흘러가며 유혹한다. ‘이불은 햇살 좋은 날, 마당 어귀 담에 널어서 말리는 게 최고야.’ 하는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아득한 날, 나의 요람은 헌 이불이었다. 어머니는 푹신한 이불을 마주하면 “네가 태어나던 순간이 떠오른다.”라고 하며 애잔한 눈빛이다. 할머니는 태아의 탯줄을 자르고 이불로 핏덩이를 감싸서 밀쳐 두었다. 아버지는 외동아들인데 내리 딸이 태어나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서운함이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엄마의 일생을 들춰보면 가슴 먹먹한 일들이 스르르 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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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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