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읽기 / 노현희
눈 속에 잡풀더미를 그려낸 화가가 있었다. 그는 거기에 얽혀 있는 다양한 선과 독특한 조형미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표현해 봐’ 하고 속삭이는 풀의 유혹 앞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화가의 말에 야릇한 질투심을 느꼈다. 시골 어디에나 펼쳐져 있는 풀더미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그 심미안이 부러웠다. 글을 쓰는 일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에서 혹은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글의 생명이라 하지 않는가. 화가의 풀더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엉켜있는 그것들에게서는 시린 바람과 무표정한 흙의 군상, 부질없이 흩날리는 눈발이 보일 뿐 화가가 느꼈던 유혹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잔치가 끝난 뒤의 어수선함이랄까. 을씨년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지기만 했다. 그들..
수필 읽기
2022. 1. 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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