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섭(李仲燮)씨와의 하루 / 박재식
내가 이중섭 화백을 만난 것은 1954년의 여름으로 기억된다. 장마비가 멎은 늦은 아침인데, 이젠 그도 고인(故人)이 된 무용가 옥파일(玉巴一) 씨가 동반하여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구두는 말할 것도 없고, 바지가랑이까지 흙투성이가 된 두 사람은 어디서 마셨는지 아침부터 거나해 있었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들어서자마자 옆에 있던 직원이 피식 하고 웃음을 뿜었을 만큼 그들의 행색은 간밤의 비에 젖은 흔적으로 무척 후줄근하고 초라하게 보였다. 원래 데카당스의 기질(氣質)이 짙은 옥파일씨도 그러하거니와 그보다도 동반자(同伴者)의 차림새나 모습은 두드러지게 개리커처하였던 것이다. 부스스한 얼굴에 노르스름한 콧수염을 기르고 시체엔 보기 드문 베레모 같은 것을 썼는데, 무릎이 나온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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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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